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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북한의 기만적 협상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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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북한의 기만적 협상 전술

입력
2013.03.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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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지난달 12일 3차 핵실험을 한 데 이어 한미 양국군의 키리졸브 훈련이 시작된 3월 11일을 기점으로 정전협정과 남북 간 불가침에 관한 모든 합의를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전쟁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 일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속내는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킨 뒤 이를 발판으로 대화국면을 조성해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올해에 미북간의 평화회담을 이끌어 내고,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군사적 긴장국면 이후 대화국면이 조성된다면 우리는 다시 북한과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다. 대화는 물론 중요하다. 2차대전 당시에 누구보다도 공산주의의 실체를 잘 알았던 영국의 처칠도 스탈린과 대화했고, 냉전시대에도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과 협상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의 전술을 잘 알고 대화에 임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993년 제1차 북핵위기 이래 진행되어 온 각종 대화에서 북한이 임한 태도는 한마디로 신뢰할 수 없는 것이었다. 특히 북핵 문제를 풀려고 시도된 6자회담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북한이 핵을 만드는 데 시간벌기용으로 이용되었음이 판명되었다. 최근 공개된 자신의 유서에서 김정일은 "6자 회담을 우리의 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핵을 인정하고 우리의 핵보유를 전 세계에 공식화하는 회의로 만들어야 하며 우리에 대한 국제적 제재를 풀게 하는 회의로 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라면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6자회담 과정에서 북한에게 철저히 속은 것이다.

또한 김정일은 2000년 6월 14일 오후 평양 백화원에서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통일 후에도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이 필요하다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미군이 계속 주둔하되 "북한에 적대적인 군대가 아니라 평화유지군 같은 역할을 해 주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김정일은 자신의 속내를 내비친 자신의 유서에서는 "미군을 남조선에서 철수시켜야 한다"고 분명하게 못 박았다. 이러한 김정일의 언급은 미북간에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한미연합사가 해체된 후 과거 월남이 월맹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후 패망한 코스를 우리도 밟을 것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현실화시킬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기만적 협상 전술은 그 뿌리가 매우 깊다. 북한이 보고 배웠던 소련은 이미 해방 이후 미국과 가진 대화에서 그러한 기만적 협상 전술을 유감 없이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소련은 미국이 제안한 신탁통치를 수용하면서 전향적으로 임시코리아 민주정부 수립을 미국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93년에 전문이 완전히 공개된 스탈린의 45년 9월 20일자 비밀지령문에 따르면 소련은 이미 9월 하순부터 통일정부가 아니라 북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

스탈린은 자신의 지령문에서 북한에 "반일 민주주의 정당∙단체들의 광범위한 블록을 토대로 한 부르조아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할 것"을 지시했다. 스탈린이 말한 부르조아민주주의 정권이란 소련의 국가이익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ㆍ경제적 교두보였고, 이것은 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중앙정부의 탄생과 3월에 실시된 토지개혁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45년 12월 25일쯤 제출된 당시 소련의 총정치국장 슈킨 대장의 보고서를 통해 더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당시 모스크바3상회의가 한창 열리고 있는 와중에 나온 슈킨의 보고서에는 신탁통치나 임시코리아민주정부 수립에 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고 스탈린의 부르조아민주주의정권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미국은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소련에게 완전히 기만당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앞으로 북한과 대화할 때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이철순 부산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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