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짧게는 유력후보들이 출마를 선언한 지 석 달, 길게는 현 정부가 레임덕에 빠져들기 시작한 이후 2년여를 끌어온 대선 레이스가 곧 결승점에 닿는다. 후보들이야 말할 것 없지만, 매 정권 말기마다 어김없는 실정(失政) 피로감에 지친 국민에겐 실로 길고도 길었던 기다림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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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말의 성찬에 취했던 호시절도 함께 끝난다. 경기 종료 순간, 사람들은 돌연 깨어나 뺨 에이는 한파와 삭풍이 현실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정치인의 공약이란 게 말 뱉은 당사자도 확신 안 서는 공약(空約)이 태반인데다, 반의 반만큼이라도 실현되기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누가 되든 당장 내 삶이 바뀌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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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후 한파는 유독 더 두렵다. 쏟아진 공약들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엄청난 때문이다. 크게 질러봐야 '경제성장 7%'나 '747 공약' 정도로나 허풍 쳤던 5년 전, 10년 전보다 간이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 전체를 장밋빛 넘어 황금빛으로 도배하는 공약들이 마구잡이로 뿌려졌다. 구체적 수치까지 들어가며 허언(虛言)이 아님을 누누이 강조했다. 단언컨대, 누구든 이 한파로부터 당장 몸을 덥혀줄 능력을 가진 이는 없다. 성실하고 양심적인 당선자라면 아마 임기 중에 몇 가지 실행기반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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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정국은 더 혼란스러울 것이다. 일절 누수 없이 서로가 가용병력을 몽땅 끌어 모아 격돌한 양대 진영간 총력전인데다, 유례없는 박빙의 접전상황이 지속된 때문이다. 정권을 손에 다 쥐었다 놓친 것 같은 패자 쪽의 열패감, 상실감이 어떨지는 상상키 어렵지 않다. 분노와 적개심으로 새 정부 출발단계부터 그악스럽게 달려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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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가 인수위 시절부터 시시콜콜 보수진영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렸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권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웬만하면 넘어가주는 '허니문 기간' 같은 건 없었다. MB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파동으로 곤욕을 치렀던 것도 '상실의 분노'를 삭이지 못하던 진보좌파 진영이 맘 먹고 불 지핀 탓이 컸다. 이번 대선에서도 분노와 절망에 치를 떨게 될 이가 50%다. 잔뜩 기대했던 만큼 성에 안 차 "잘못 뽑았다"고 후회할 이들이 또 절반이다. 상황이 훨씬 좋지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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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어느 후보가 당선되든 핵심 선결과제는 통합이다. 그렇게들 열광했던 안철수의 '새 정치' 요체도 결국은 국민통합이었고, 앞선 정권들의 실패도 통합의 실패에서 비롯됐다. 생각이 다른 절반의 국민 마음을 얻지 못하면 차기 정부의 앞날도 뻔하다. 선거의 목표는 승리이되, 정치의 목표는 통합이다. 당선자와 새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국민도 통합에 관한 한 객체가 아닌 책임 있는 주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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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긴 시간, 모든 이들이 각 후보들을 저울질하고, 정책을 평가하고,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하고 또 끊임없이 글을 써댔다. 그러나 선거일이 임박한 지금 실체가 다 드러난 후보들 얘기는 더 이상 부질없다. 누굴 찍으라고 아예 대놓고 선거 운동하지 않는 다음에야. 이제는 선거 후를 말해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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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 필요한 것은 결과가 어떻든 격한 분노와 지나친 기대 모두 잠시 접어두고 당분간 새 당선자, 새 정부의 행보를 담담하게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일이다. "내가 아니라, 네가 뽑은 정부"라는 식의 적대나 "뽑아줬으니 당장 결과를 내놓으라"는 식의 조급함은 차기 정부를 또 실패로 모는 출발점이 다. '실패 정권'은 그만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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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가 되면 이민 가겠다"는 등의 말도 들린다. 대부분 시정의 흰소리들이지만 버젓한 지식인들도 해댄다. 선거는 어차피 다수의 선택에 따르기 위한 절차다. 이 따위 언사는 생각이 다른 절반의 국민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모욕하는 짓이다. 차라리 초야에 묻혀 조용히 살든지, 아니면 지식인답게 통합과 개선을 위해 책임 있는 일을 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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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모두들 마음의 준비들을 단단히 해두라. 지지후보가 져서 분노, 이겨도 또 실망 않도록. 겨우 엿새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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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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