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딱 일주일 남았다. "누가 되느냐?" 만나는 사람들마다 들이대는 질문이다. 할 수 있는 답변이라곤 "글쎄…"가 전부다. 기자로서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답답한 마음에 지나간 대선에서 'D-7', 12월 12일자 한국일보를 뒤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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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제17대 대선. 1면 톱 기사는 전날 밤에 있었던 제2차 TV토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정동영 대통합민주당 후보,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발언내용을 간략하게 취급했다. 주요 지면은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건이 뒤덮고 있었다. 유조선 사고(7일) 이후 언론은 주민들의 안타까운 생계를 줄기차게 다루고 있었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인데도 선거 기사는 뒷전으로,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D-6인 13일자 3면의 제목은 이었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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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10년 전인 1997년 제15대 대선 때 D-7의 신문을 들췄다. 12일자 1면은 물론 2, 3면까지 대선 기사는 없었다. 'IMF 사태'가 온 지면을 도배하고 있었다. 전날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한 "모든 것은 내 책임"이란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필두로 와 같은 타이틀이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침 OECD 가입 1주년이었던 그날, 임창렬 경제부총리가 미셸 캉드위 IMF 총재 앞에서 서명하는(3일) 사진이 이란 제목을 달고 다시 실렸다. 신문 두 장을 넘기고 4면 아래쪽에 가서야 '이회창씨 아들 체중 고의감량 의혹'이란 기사가 보였다. 한달 여 전에 DJP 연합이 있었고,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가 끝까지 뚝심을 발휘해 D-7 상황에선 이미 대세가 판가름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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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002년 12월 12일자 한국일보를 들춰보았다. 최근의 지면과 너무나 흡사했다. 1면의 제목들부터 그렇다. 등이 눈에 들어왔다. 사흘 전 스커드 미사일 완제품 10여기와 부품을 싣고 예멘으로 가던 북한의 화물선이 인도양에서 미국에 나포된 사건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등의 해설기사가 지면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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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D-7 상황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접전을 벌이고 있었고, 투표 당일 오전까지 박빙을 이어갔다. 어떤 언론도 두 후보의 우열을 점치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 분량과 사진 크기까지 자로 재가며 보도했던 상황이 오늘과 다르지 않았다. 한가지 더, 이틀 전 제2차 TV토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나와 '2강 1약'의 3각 논쟁을 벌인 것까지 꼭 닮았다. 여론조사에서 2등과 3등을 다투던 두 후보가 단일화하여 1등의 후보와 대결하는 대목도 그랬다. 다만 D-7 한국일보는 란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었다는 점이 10년 후 오늘의 모습과 다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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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일주일이 하도 궁금하여 5년 전, 10년 전, 15년 전의 D-7 상황을 되짚어 보았으나 역시 "글쎄…" 이상의 답변을 하기 어렵다. 한 가지 어렴풋이 잡히는 건 있다. 대통령 선거 D-7 모습이 10년마다 되풀이 되고 있다는 추론이다. 1997년과 2007년 대선은 D-7 시점에서 대세가 어느 정도 결정돼 있었고, 2002년과 2012년은 일주일 후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다는 대목이다. 또 살펴보면 경제-정치-경제-정치 분야가 번갈아 가며 중요한 표심을 가르는 변수가 되었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이번 대선은 애초 경제 분야, 먹고 사는 문제로 시작됐으나 여야가 민생ㆍ복지 이슈에서 계속 의견차를 좁혀와 D-7 시점에선 새정치나 정치쇄신이 더 중요한 선택의 변수가 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일주일, 후보는 후보대로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무엇을 해야 할지 바짝 긴장하고 되돌아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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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진 주필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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