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앞으로도 한국정치의 핵심변수로 남을 안철수

모호한 경계인의 입장 버리고 분명한 선택해야

돌연한 소멸은 확실히 극적인 반전효과를 낳는다. 생전 온갖 추문으로 비난받은 마이클 잭슨이 애끊는 추모 속에 팝의 제왕으로 부활하고, 집권 내내 지독한 저평가에 시달리던 노무현이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재탄생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안철수의 갑작스러운 퇴장도 그렇다. 당장은 비판적 평가도 많지만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선거막판 이전투구는 곧 안철수의 부재를 아쉬워하게 할 것이다. 누가 되든 정치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고, 달콤한 약속들이 절반도 지켜질 리 없다. 여전한 구태정치의 잔재들을 발견할 때마다 사람들은 안철수의 맑은 얼굴을 그리워할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 ‘정치인 안철수는 안철수 아니다’란 칼럼을 썼다. ‘출마 현실화부터 양보까지 짧은 기간에 확인한 건 그와 현실정치와의 부적합성이었다. 그는 애당초 정치의 진흙탕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본연의 안철수로 돌아가고, 대중도 부질없는 희망을 접는 게 옳다’는 내용이다. 당시의 이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어떤 식으로 포장해도 ‘아름다운 단일화’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분명한 ‘분노의 사퇴’였다. 문재인 진영은 황망해 하고, 박근혜 쪽엔 화색이 돌았다. 뜻밖에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뻔히 불리한 단일화안을 강요 당한데 대한 분노다. ‘MB 아바타’ 따위의 불쾌한 소문이 들리고, TV 첫 토론에선 선의를 악의로 갚는 듯한 집요한 공격에 또 상처를 입었다. 감성 여린 그로선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퇴의 변에서 그는 “영혼은 팔지 않았고, 앞으로도 팔지 않을 자신이 있”음을 자부했다. 언뜻 감동스럽지만 정치에 대한 근본적 오해가 느껴진다. 정치는 선악의 가치를 다투는 영역이 아닌, 다양한 국민의 일상적 이해를 다루는 일이다. 그의 ‘영혼론’에는 지순한 선(善)이 전제돼 있다. 실제로 그는 콘서트나 저서에서 주옥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법정 같은 종교인이나 존경받는 사회원로의 발언에 가까운. 구질구질한 현실은 그와 끝내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그의 인식 오류를 단적으로 보여 준 건 늘 입에 달고 다니던 ‘국민의 뜻’이었다. 국민의 뜻에 따라 대권 도전에 나서 국민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단일화도 개헌도 국민 뜻에 따르겠다고 했고, 시정의 서민들이 구체적 어려움을 호소할 때도 늘 “국민의 뜻을 살리는 정치를 하겠다”고 답했다. 오죽했으면 “연평도에 당장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도 국민의 뜻을 물어 대응할 거냐”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국민의 뜻이 쉽게 모아지는 사안이면 애초에 현안도 아니다. 현안이란 대개 첨예한 이해가 맞서거나 판단이 극히 어려운 문제들이다. 다수의 선택이 꼭 옳은 것도 아니다. 현안에 대한 답으로의 ‘국민의 뜻’은 그러므로 “준비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의 다른 표현이다.

결국 ‘정치인 안철수’는 1년여 동안 전혀 진화하지 않았다. 온전히 스스로의 판단과 노력으로 일구어낸 모범적이고 성공적 삶의 경험이 진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벽이 됐을 것이다. 지나친 자기확신은 정치인에게 가장 위험할뿐더러, 타협과 존중 양보가 요체인 새 정치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떠난 안철수를 길게 복기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남은 대선 기간에 어떤 역할을 하든, 또 누가 되든 그는 앞으로도 정치의 핵심변수로 남을 가능성이 대단히 큰 때문이다. 현실이 답답할수록 더 큰 희망으로, 더 간절한 갈망의 대상으로 부활할 것이다.

그렇다면 안철수는 이제 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 국가지도자로서 가능태를 넘어 현실태가 되려면 껍질을 깨고 정치현실에 확실하게 발을 담가 제대로 준비하든지 아니면 이제껏 그래왔듯 사회의 존경받는 멘토로, 젊은 세대의 롤모델로 남든지. 물론 어느 쪽이든 상당 부분 버리는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전자는 본연의 안철수를, 후자는 정치인 안철수를.

모호하게 기대를 잔뜩 부풀렸다 돌연 허망하게 바람을 빼는 일의 되풀이는 그가 그토록 떠받드는 국민의 뜻과도 한참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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