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의 혜곡 최순우 옛집은 그의 성품처럼 단아하고 소박하다. 그리 넓지 않은 아담한 한옥에는 평생을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묻어난다. 앞마당의 우물과 소나무, 안채의 목가구, 뒤뜰의 화초와 장독대 등 하나하나가 꾸밈없이 수수하다. 그는 여기서 "잘 생긴 며느리 같다"던 달항아리를 보며 를 집필했다. 주택 개편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던 이 집은 시민들의 모금으로 살아 남아 '시민문화유산 1호'라는 영예를 안았다.

■문화예술인들의 옛집을 보존하자는 움직임은 2003년 육당 최남선 등 문인들의 잇따른 고택 철거가 계기가 됐다.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초입에 있던 최남선 고택 '소원(素園)'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헐렸다. 육당의 후손들이 "건물이 남아있으면 자꾸 친일이라는 아버지의 상처가 덧나는 것 같다"며 매각해 지금은 고급 빌라가 들어섰다. 비슷한 시기 시인 박목월의 원효로4가 옛집과 소설가 빙허 현진건의 부암동 고택은 소유주가 매각해 철거됐고, 김수영 시인의 종로6가 집은 폭설로 무너졌다.

■시인 이상의 서울 통인동 옛집 복원을 둘러싼 해프닝도 있었다. 문화재청이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으나 이상이 살던 큰아버지 집이 아니라 이상이 떠난 뒤인 1933년 필지가 쪼개지면서 집장사들이 지은 집의 일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충분한 고증 없이 여론을 쫓아 등록작업을 밀어붙이다 사달이 난 것이다. 뒤늦게 등록문화재가 해제된 이 집은 '이상의 집'이라는 이름의 문화공간으로 꾸며졌다.

■철거 위기에 놓였다 시민단체의 보존운동으로 남겨진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춘곡 고희동의 서울 원서동 옛집이 복원돼 일반에 공개된다. 예전에 찾았을 때 녹슨 철문과 깨진 기와지붕, 잡초만 무성했던 마당이 번듯한 한옥으로 되살아났다. 예산이 없어 방치됐던 서울 남현동 미당 서정주의 집 '봉산산방(蓬蒜山房)'은 관악구와 서울시의 지원으로 복원돼 지난해 공개됐다. 더 많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의 산실이 시민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인기 기사

api_db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