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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11월 1일] 10%만 치르는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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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11월 1일] 10%만 치르는 선거

입력
2012.10.31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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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케 시간이 맞으면 TV 오디션프로를 즐겨본다. 출연자들이 절절하게 혼신을 다하는 모습에서 큰 감동과 자극을 얻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사회에서 오직 순수한 실력만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어디 흔한가. 그런데 지난 주 '슈퍼스타K'를 보고 더 지켜볼 흥미를 잃었다.

유망주로 꼽히던 출연자가 불안정한 음정으로 무대를 망쳤다. 전문가 평가도 그랬거니와, 문외한에게도 한계가 분명하게 보였다. 한데 그는 살아 남았고 좋은 공연을 펼친 다른 도전자가 희생됐다. 한번 마음에 두면 그만인 열혈 팬들의 투표 덕이라고 했다. 이러면 매주 피 말리는 경연이 무슨 의미가 있나.

'슈스케'만이 아니다. 우리사회 여론 또한 다를 게 없다. 거의 매주 대선후보 지지율이 나오고 있으나 9월 3자 대결구도가 정립된 이후의 판세는 거의 고착화 흐름이다. 조사기관마다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박근혜 40%, 안철수 25%, 문재인 20% 안팎이다. 양자대결도 박근혜ㆍ안철수ㆍ문재인 모두 45% 언저리에서 미미한 차이로 계속 혼전이다. 유의미한 변화라야 단일화 지지도에서 다소 엎치락 뒤치락 하는 정도다.

주목할 것은 박근혜 지지율이다. 3자 구도 전의 인혁당 발언은 그렇다 치고, 최근 정수장학회 기자회견은 분명 큰 변수가 될 걸로 보였다. 여전히 닫힌 과거사 인식도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 논란이 된 자신 문제에서도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은 점이 크게 거슬렸다. 대중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정치지도자와 국민 간 인식의 유리(遊離)야말로 지난 10년 우리사회를 갈등과 대립으로 몰아넣은 원흉이었다. 당연히 대중은 이 문제를 심각히 볼 것이었다. 그러나 웬걸, 여론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에선 소폭 상승세까지 나타났다. "회견내용에 공감 못한다"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는데도.

따지고 보면 역대 대선에서 보수층 표는 40%가 최저선이었다. 다만 15대 때는 이인제로 인한 보수표 분산으로, 16대 때는 49%에 달하는 예상치 못한 반(反)보수층의 결집으로 정권을 내주었을 뿐이다. 후보가 누구든, 공약이 뭐든, 어떤 흠결이 드러나든 괘념치 않고 일찌감치 정해놓은 내 갈 길만 가는 보수층 유권자가 최소 40% 이상이란 뜻이다.

정도는 덜하지만 반보수진영도 크게 다를 것 없다. 노무현정권 실패의 반작용이었던 지난 선거는 예외였으나 이후 총선, 지방선거 등을 거치면서 엇비슷한 득표율이 고착됐다. 누구로 단일화하든 양자 대결에서 안철수ㆍ문재인 모두 비슷하게 박근혜와 박빙의 판세를 이루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 선거는 크게 봐야 유권자 10%의 선거다.

이런 식의 완강한 진영구조에서 인물이나 정책을 따지는 일은 애당초 부질없다. 후보의 언행이나 정책, 토론은 선택을 돕는 판단자료라기 보다는, 이미 끝난 선택을 더욱 굳히는 용도로나 쓰일 뿐이다. 신문이 공들여 정책분석을 해도 매양 "정책보도 실종" 같은 딴 소리나 듣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미 선택한 마당에 정책 따위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고, 관심이 없으니 이런 내용이 눈에 띌 리 없다.

이 무조건적 진영선택 문화는 국민을 선거의 승자와 패자로 나누고, 이후 정부에선 다시 무조건 관대한 절반과 사사건건 극렬한 저항의 절반으로 나눈다. 그러므로 누가 되든 차기 정부의 가장 중요한 일은 반대편 진영을 더 인정하고 배려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이 강고한 진영인식을 부수는 국민통합, 사회통합이다. 그러지 않고는 국민전체를 보는 책임정치도, 공정한 평가에 기반한 합리적 정부선택도 성립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토록 원하는 정치개혁의 출발점이 정확히 여기다.

물론 진영을 도리어 선거와 통치에 적극 악용해온 정치지도자들의 책임이지만, 거기에 휘둘려온 유권자들의 책임도 가볍지는 않다. 지지후보가 뭔 짓을 해도 끄떡 않는 완고한 보수나 진보는 합쳐서 30%도 많다.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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