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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강남스타일'에서 읽는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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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강남스타일'에서 읽는 시대정신

입력
2012.09.1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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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스타일' 성공에 대한 해석들은 구구하다. 위선적 부유층 문화에 대한 조롱이 통쾌해서, 낮엔 정숙하다 밤이면 미쳐버리는 반전의 묘미 때문에, 코믹과 섹슈얼리티가 절묘하게 결합돼 있어서, 그냥 재미있고 신나서… . 싸이의 진짜 의도가 뭐였든 상관없다. 어차피 모든 작품의 느낌과 해석은 수용자의 권한이므로.

그러니 나름의 견해 하나쯤 더 얹어도 상관없을 터. 사실 이 곡은 부유층 패러디라기 보다는, 오히려 분수 모르고 그들 흉내를 내고 싶어하는 서민뱁새들에 대한 조롱에 가깝다. 싸이 본인 말대로 워낙 '강남스럽지 않은' 그의 용모가 이 불순한 도발을 가릴 뿐이다.

강한 비트에 단순 멜로디의 반복은 물론 인상적이지만, 반응이 유튜브를 통해 폭발한 현상에 주목하면 핵심은 영상이다. 싸이가 강남 젊은이인양 잔뜩 폼을 잡는 장소는 동네놀이터, 목욕탕, 관광버스, 놀이배(요트가 아닌), 한강둔치, 지하철 등 온통 서민공간이다.

나름 차려 입은 싸이의 옷차림도 이 배경 속에선 촌티가 줄줄 흐른다. 진짜 강남스타일의 포스를 뿜어내는 유재석의 빨간 차와 노랑 의상, 싸이의 파랑 옷의 배합은 촌스러움의 압권이다. 말춤은 그 절정이다. 연습 없이도 누구나 어릴 적 한번쯤 서부영화를 보고 말 타는 흉내를 냈음직한 딱 그 동작이다. 다른 춤들도 초등학교 오락시간에나 어울릴 수준이다.

'강남스타일'의 성공포인트는 결국 허접하고 싼 티 나는 키치(Kitch)의 정서다. 정제되고 세련된 주류문화의 틈을 비집고 돌연 튀어나온 이 전복(顚覆)이 세계인들을 뒤집어지게 만든 진짜 요인이다. 가사가 뭔 뜻인진 몰라도 폼 잡지 않는 날 것 그대로의 영상, 배경, 춤이 다 유쾌 통쾌한 것이다.

문화에 입 댈 깜냥이 아닌데도 '강남스타일'을 말하는 건 이 전복적 감수성이 지금 우리, 나아가 지구촌사회 저변에 깔린 압도적 정서라는데 생각이 미친 때문이다. 근엄한 엘리트주의의 완고한 구조 속에서 그들만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이 보통사람의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정서다. 지난해 세계를 휩쓴 월스트리트 점령형(形) 시위도, 한동안 대단했던 우리의 '나꼼수'열풍 같은 이상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원래 가짜나 사이비예술을 지칭하던 키치가 최근엔 가식 없는 진정성, 솔직함 따위로 의미가 전도됐다. 예전 거울에 비치던 이발소그림을 떠올려보라. 개울가 꽃밭에 물레방아 도는 예쁜 초가집이 있고, 멀리 산마루에 붉은 노을이 걸린 풍경에 사실은 멍하니 눈길을 빼앗기지 않았던가. 키치문화는 그러므로 더 이상 주눅들 필요가 없는 보통사람들의 당당한 자기표현이며, '그들만의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조롱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정서에 대한 진솔한 이해와 포용 수준이 올해 대선의 승부를 가를 것이다. 현실에선 실패했던 노무현이 부활해 제1야당의 대통령후보를 만들어낸 것도 서민정서와 간극이 없는 그의 키치적 느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안철수는 고급스럽지만, 그들끼리 노는데 익숙한 일반적 엘리트들과는 전혀 다른 전복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출마선언에서 국민일반을 개혁의 주체로 놓고 자신을 리더가 아닌 조율사로 겸손하게 자리매김한 것도 기성정치인에게서 봐왔던 모습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는 여전히 완강한 기존구조에 갇힌 느낌을 주는 박근혜가 가장 불리할 것이다. 시대를 거스르는 경직된 역사인식, 불만을 허용치 않을 것 같은 절대적 권위, 끊임없는 주변의 구태와 부패, 오랫동안 보아온 낡은 인물들, …. 단언컨대 기존 틀을 벗어나지 못한 이런 과거형 엘리트정치문화로는 시대의 마음을 잡기 어렵다. 과도한 의미부여일지 모르나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시대정신의 흐름이 어디쯤 머물러있는가를 가늠케 하는 지표 중 하나다.

어쩌면 유력 대선주자들이 한번 써먹어보겠다고 남몰래 말춤 연습들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 그렇더라도 중요한 건 흉내나 아니라 공감일진대.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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