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정리해보자. 이념적으로 좌ㆍ우익, 또는 좌ㆍ우파는 비교적 분명하게 구분된다. 대체로 우파는 자유, 개인주의, 경쟁, 효율성, 성장을 중시하고 좌파는 평등, 공동체주의, 배려, 분배, 복지 등에 무게를 둔다. 따라서 우파는 경제적으로 시장원리를 존중하고 국가 개입을 줄이는 자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좌파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 통제를 필요로 하는 사회주의적 경향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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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나 진보는 훨씬 유동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문자 그대로 보수는 현상유지와 안정을, 진보는 변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성향이다. 결국 상황에 따른 분류다. 실제론 어떠했든 이론적으로 극좌에 가까웠던 구 공산권 체제에선 자본주의적 개혁이 오히려 진보가 되고, 체제 기득권 유지세력이 보수진영이 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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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ㆍ진보 규정과 관련, 유시민 통합진보당 전 대표의 명쾌한 정리에 무릎을 친 적이 있다. 물리적으로 보수는 기존 상태를 가급적 유지하려 드는 '관성의 법칙', 진보는 상태나 방향을 바꿔보고자 하는 '운동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이념적 상대방에 대한 비판용으로 걸핏하면 접두사로 쓰는 수구, 급진은 완전한 정지상태나 과속을 뜻하는 속도개념쯤으로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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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념 성향을 설명하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개념이 있다. '색깔'이다. 붉은 색은 19세기 파리코뮌 당시 혁명정부 깃발에 사용된 이래 피의 (공산주의)혁명을 상징하는 색깔이 됐다. 과거 공산권 국기가 대개 붉었던 이유이나, 공산권이 대부분 소멸된 이 시대에 붉은 색은 더 이상 이념의 빛깔로 쓰이지 않는다. (중국의 오성홍기도 지금은 혁명보다는 전통적으로 상서롭게 여겨온 색으로서의 이미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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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독 우리 사회에서만 이 색깔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참혹한 동족상잔의 트라우마와 함께 당장 현존하는 북한의 위험성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색깔론은 진보인사나 정적, 반정부 활동가들에게 마구잡이로 씌우는 족쇄가 됐다. 한국전쟁기 미국에서 벌어졌던 비슷한 형태의 매카시 광풍이 불과 4~5년 만에 소멸했던데 반해, 우리 경우는 무려 반세기 동안 무분별한 색깔 씌우기가 횡행했다. 죽산 조봉암서부터 DJ에 이르기까지 애꿎은 숱한 이들이 희생되고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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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사회도 많이 달라졌다. 지각 있는 이들이라면 이제 진보좌파 이념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도리어 체제 결함과 한계에 대한 보완책 내지 대안으로서 좌파의 가치를 진지하게 숙고하는 분위기가 돼가고 있다. 우리에게도 붉은 색은 더 이상 이념의 색깔이 아닌 것이다. 지금 붉은 색이 의미하는 건 오직 진보와는 가장 먼 곳에 있는 진짜 수구세력 북한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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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야권이나 진보진영 일각에서 제기하는 색깔론 비판은 그래서 어이없고 상투적이다. 문제가 되는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주요 인물들이 과거 몸 담았던 조직의 성격이나 활동, 그다지 바뀐 것 없어 보이는 지금의 인식으로 보아 연북(連北)까진 모르겠으되, 적어도 종북의 의심마저 털어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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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북해 김일성을 만나고 북한노동당에 입당하거나, 내부 자료를 북한에 넘기고 심지어 활동의 큰 줄기마저 북한측 의도에 줄곧 부합해온 조직에 몸 담아온 이들이다. 대한민국 체제와 지도자, 정책들에 대해 사사건건 결사적으로 시비를 걸면서도, 정작 북한체제와 지도자에 대해선 그들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며 극구 감싸온 이들이다. 이게 색깔이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어느 정도나 돼야 색깔을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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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론은 심히 억울할 때나 쓰는 용어다. 지금의 색깔론 비판은 얼굴에 잔뜩 분칠해 놓은 걸 뻔히 보면서도 왜 색깔을 입히느냐고 따지는 격이다. 필요한 건 생각 없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탈색을 입증하거나 최소한 희석시키려는 노력이다. 그게 국가 안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우려를 더는 일이거니와, 또한 붉지 않은 순정한 진보좌파를 살려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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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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