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반핵 양키고홈!" 1986년 봄, 익숙한 "독재타도, 민주쟁취" 대신 생경한 구호가 시위에 등장했다. NL(민족해방) 주사파가 마침내 대학운동권의 대세를 장악했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한해 전 서울미문화원 점거 때도 "우린 반미가 아니다"라고 극구 해명했던 그들이었다. 넥타이 차림으로 민주화 시위에 동참했던 시민들은 알지 못했다. 반미와 연북(連北)이 이미 운동권의 중심 노선이 됐음을.

때맞춰 '강철서신'이 대학가를 직격했다. 앞서 '해방서시' 등을 통해 주체사상의 씨를 뿌린 서울대 법대생 김영환이 후배지도를 위해 만든 문건이었다. '북한 민중은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노동을 (통해)… 매우 높은 생산력과 생활ㆍ문화수준을 누리고 있으며, …폭 넓은 민주주의적 권리를 보장받으면서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수백만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과 폭압으로 북한 상황이 최악이던 때였다. 이 서신을 봤다면 북한 당국자들도 손발이 오그라들었을 것이다. 주사파의 인식은 단순 명료했다. '남한의 모순은 데모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므로 미국을 몰아내고 사회주의혁명을 해야 한다. 이미 혁명을 이뤄낸 북한은 지도적 기지이자 모델이다.'

김영환의 맹목은 91년 김일성을 만난 17일간의 북한경험으로 일거에 깨어졌다. "실제의 북한은 극도의 반인권, 관료주의, 부패와 무능으로 뒤덮인 죽은 사회"였던 것이다. 주체사상은 오직 김씨 일가를 위한 변형된 스탈린주의일 뿐이었다. 그는 주사파 전위조직으로 구축했던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97년 스스로 해체하고, 이듬해 진보월간지 에 '수령론은 거대한 사기극'이라는 글을 게재함으로써 미몽에서의 탈출을 선언했다.

한 시대를 뒤흔들고 홀연 사라졌던 그가 다시 뉴스 전면에 등장했다. 중국이 국가안전위해 혐의로 그를 구금한 것이다. 북한 인권운동과 탈북자 지원활동을 해온 게 문제가 됐다. 또 하나, 한때 그의 추종세력이 주도한 통합진보당 사태도 그의 기억을 다시 불러냈다.

김영환의 주체사상 비판과 민혁당 해체를 변절로 몰고 그 때의 신념을 그대로 간직한 상당수가 진보정당에 들어갔다. 그들이 당권을 장악, 독선과 전횡을 저질러온 것이 통합진보당 사태의 발단이다. 이석기ㆍ이상규 당선자는 당시 핵심간부들이 노동당에까지 입당한 민혁당의 주요 조직원이었다. 이들과 신념을 공유하는 당선자는 서넛이 더 있다.

보름 뒤면 이들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다.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국회의원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들이 준수를 약속해야 하는 헌법은 민주공화국의 자유민주적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주사파는 북한정권의 정통성을 우위에 놓고,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을 꿈꿨던 이들이다. 김영환과 달리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이후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을 거둘만한 변화를 보인 적이 없다. 헌법대로라면 이들은 애당초 자격이 없다. 이들이 대한민국의 국가안위와 관련한 온갖 최고기밀에 대한 접근권을 갖는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지식인을 포함한 많은 국민이 진보진영의 저간 사정을 웬만큼 알고도 외면해온 것은 부채의식 때문이다. '그 험한 세월, 그래도 감옥에 가고 희생하면서 민주화의 활로를 연 건 그들 아닌가.' 그러나 이제 그런 빚을 털어낼 때도 됐다. 그들에게도 아닌 일은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요즘 일반의 단호한 반응에서도 그런 인식의 전환이 감지된다.

인권, 평등, 분배, 배려, 생태주의 등 진보적 가치는 우리가 소중히 보듬고 추구해야 할 궁극의 목표다. 이의 실현을 위해서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기반한 국가안위는 더욱 확고히 해야 할 기본전제다. 그 전제가 자칫 무너질 위기에 처한 현실, 그게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의 진짜 두려운 본질이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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