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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이념보다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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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이념보다 상식이다

입력
2012.04.1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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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 출신 첫 국회의원 당선자 이자스민에게 쏟아진 인터넷과 트위터 상의 비난은 거의 테러 수준이다. 성장과 결혼, 한국 정착 이후의 삶을 아무리 살펴도 그가 그토록 욕을 먹을 이유는 찾기 어렵다.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정책 등을 놓고선 충분히 논쟁할 여지가 있어도 "매매춘으로 팔려온 X" 따위의 인격살인적 공격은 전혀 다른 문제다.

도대체 이런 식의 그악스런 언사로 걸핏하면 공론장을 시정잡배의 싸움터로 만드는 자들은 누구인가. SNS 공간을 자주 더럽히는 상습범들이란 얘기도 있으나 직접 확인한 바는 없다. 다만, 그 인식의 천박함과 언어의 저열함으로 보아 언뜻 골방이나 PC방의 어두운 한 켠에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종일 자판이나 두드려대는 이미지는 떠올려진다. 책임 있는 가장이거나 번듯한 생활인의 느낌과는 멀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새삼 확인한 것은 그래도 살아 있는 우리사회의 자정능력이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훌륭한 한국의 며느리이자 어머니입니다. 힘 내세요" 등의 따뜻한 격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씨가 "상처도 받았지만 대한민국의 포용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한 기회였다"며 밝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평소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아 종종 과소평가되지만 이 건전한 상식인들이야말로 여전히 우리사회의 주류이자 진짜 주인들이다.

통상 우리국민의 정치적 판단이나 행동 동기를 보수 30%, 중도 40%, 진보 30% 정도의 이념성향 비율로 분석한다. 중도 40%의 이동에 따라 선거나 여론의 판세가 가름된다는 것이다. 여러 통계에서 확인된 만큼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전체를 포괄하는 분석틀은 아니다. 이는 당초 민주통합당의 압승으로 예상됐다가 극적으로 뒤집힌 이번 4ㆍ11 총선결과를 통해 더 분명해졌다.

거칠게 분석해서 수도권 일원 여러 곳의 막판 반전은 결정적으로 김용민의 막말파동에 따른 표심의 이동이었다. 이념과는 별 상관없는 상식의 판단결과였다. 또 다른 반전으로 평가 받은 강원 지역의 민주당표 대거 이탈도 마찬가지다. 접적지역의 특성상 통합진보당과의 연대에 불안해진 중도층의 이념적 판단과 함께 전통적, 안정적 정서가 강한 문화에서 역시 상식에 반한 막돼먹은 언행이 거부감을 일으켰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결국 핵심은 이념보다 상식이다. 노무현 씹기가 국민스포츠처럼 횡행하던 때도 한나라당이 어쭙잖은 탄핵 시도로 18대 총선에서 무참하게 궤멸한 일을 떠올려보라. 이념과는 상관없는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는 유권자들의 상식적 판단결과에 다름 아니다. 이후 MB가 선택된 것도 상식적 정치의 복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고, 2년 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참패 역시 이런 기대가 속절없이 배반당한 데 따른 상식의 심판이었다. 소수가 주도하는 이념놀이는 겉으론 늘 요란하지만 실상 정국판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적은 별로 없다.

문자 그대로 상식이란 게 별 것일 리 없다. 막말이나 욕설을 내뱉는 건 옳지 않고, 논문 표절이나 성추행은 있어선 안 될 일이며, 불법사찰 같은 것은 용납돼선 안 된다는 그런 게 상식이다. 일반적 도덕과 사회적 규율, 법을 거스르는 일은 해선 안 된다는, 딱 그 정도의 인식이다. 나아가 나라는 튼튼히 지켜져야 하고, 사회는 공정하고 안전해야 하며, 경제는 좀 더 나아져서 먹고 사는 일에 어려움이 덜했으면 하는 정도가 상식의 기대 수준이다.

대권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특히 명심할 일이다. SNS공간이나 또는 광장에서 표독한 싸움을 즐기는 이들은 사실 한 줌일 뿐, 소리 없는 압도적 다수가 상식의 눈으로 차곡차곡 판단의 근거들을 쌓아가고 있음을. 남은 여정에서 작은 정치적 승부에 눈 멀어 이 간단한 상식을 잊는 순간 선택 받을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본연의 일로 부질없는 싸움에 눈 돌릴 틈 없는 조용한 이들이야말로 정작 가장 무서운 심판자들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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