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다들 힘들고 가난했어도 암담하진 않았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는 한층 더 나을 내일을 의심치 않았던 때문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경제는 날로 커졌고 일자리는 많아졌다. 일만 하면 그럭저럭 살림을 꾸릴 만했다. 나이 드는 것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어렵게 공부시킨 아이가 장성해 제 구실을 하면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세상의 작동법칙이라고 믿었던 이 인식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사람들은 오늘이 어제보다 더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심리적 공황이 휩쓸고 대량 실업, 일자리 격감, 조기 퇴직이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생활고로 해체된 가정과 제 살기도 벅찬 자식에게 노후를 기댈 여지도 없어졌다. 2008년 금융위기는 또 한 번 잔인한 쐐기를 박았다. 삶의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세상에 모두가 절망했다.

끔찍한 기억을 복기하는 것은 '왜 지금 복지인가?'에 답하기 위함이다. 복지는 한마디로 사회의 불안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최대한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 변화를 보라. 국민 4분의 1이 빈곤층으로 추락했고, 언제든 생계를 잃을 수 있는 비정규직이 취업자의 3분의 1을 넘었다. 이혼율이 치솟아 가족과 공동체가 해체되고, 심신을 기댈 데 없어지면서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방향 없는 불만과 불신이 팽배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적대하는 반목의 사회가 됐다. 지위와 나이를 불문하고 온통 적개심과 증오가 가득한 요즘의 언어습관 또한 이런 변화의 반영이다.

여기서 누군들 안전할까. 취약계층만이 아니다. 이런 불안정사회에선 부와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조차 지속적 안정을 보장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복지는 경제문제를 넘어선 사회 존속, 나아가 중앙대 신광영 교수의 표현대로 국가안보의 문제다. 이를 마치 국가나 가진 자의 시혜처럼 여기는 인식이 근본적 오류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문제는 다루는 방식이다. 복지가 안보사안이라면 다루는 데도 동일한 논리가 적용된다. 전략목표를 세우고 투입자원의 효율성과 우선순위를 계산, 세심하게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한정된 국방예산으로 좋다는 최신 무기들을 몽땅 들여다 갖출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도 쏟아져 나오는 복지공약을 보면 마치 전 군이 최신 복합소총서부터 항공모함 전단까지 한꺼번에 다 갖추게 하자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현실성은 고사하고 DJ정부 때부터 지금까지 복지공약 이행률이 20% 이하의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 스스로도 믿지 않을 기만이다.

워낙 복지에 소홀했던 탓에 당장 손댈 분야만 해도 경제활동인구 확보를 위한 영유아 보육, 지속 성장을 위한 기본교육, 취업 지원과 함께 빈곤ㆍ장애ㆍ고령 취약계층 보호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론된 이 부분의 불안정성을 줄이는 데만 해도 엄청난 재정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다른 예산항목의 희생까지 마땅히 감수하더라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되는 분야다.

그러나 요구도 크지 않은 사병급여 인상안이나 사교육비가 더 문제인 고교의무교육, 반값등록금에 대학생 주거보장 등의 공약들은 기막히다. 아직은 아무리 짜내도 재정능력 밖이거니와 재생산효과도 높지 않은 사안들이다. 이런 공약이 각 정당 공히 수십 개씩은 된다. 급식을 포함한 전면 무상시리즈 또한 선택적으로 조정하면 다급한 복지공백을 더 촘촘히 메울 수 있을 것이다. 다급한 위험요소들부터 줄여가면서 차차 보편적 복지로 나가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말이다.

복지는 모두가 안전하게 살기 위한 방편이자, 지속적 발전을 위한 최소한의 시장 유지에도 필수적인 사안이다. 복지 확대에 무조건 포퓰리즘적 시각을 들이대는 부류와 마찬가지로, 복지공약을 함부로 내지르는 정당들에서도 이게 얼마나 중요한 시대적 사안인지를 모르는 무지와 가벼움이 똑같이 느껴진다. 거듭 강조하건대 복지는 안보문제처럼 다뤄야 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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