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심심풀이 찾아본 임진년 역사는 대체로 병란과 재앙이었다. 임진왜란이 대표적이거니와 당장 60년 전인 1952년도 한국전쟁이 한창인 때였다. 의미 없는 소모전에 애꿎은 젊은이들이 하루에도 몇 백씩 죽어나갔고 유례없는 가뭄까지 들어 난민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1892년은 외세침탈과 탐관오리들의 가렴주구로 백성의 고통이 극에 달했던 시기로, 동학도들의 교조신원운동이 2년 뒤 혁명의 폭발을 예고하던 해였다.

그 60년 전 임진년은 조선의 국운 쇠망 징조가 뚜렷해지던 때였고, 다시 그 60년 전에는 조선 500년 최악의 수해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러니 '임진년은 흑룡의 해여서 좋다'는 건 아무 현실적 근거가 없다. 일반적으로 검은 색에서 떠올려지는 것도 밝은 희망보다는 어둡고 불안한 기운에 가깝다. 기왕이면 좋자고 하는 매년 새해 덕담이지만 올해는 아전인수 식 의미 부여가 하도 과해 하는 얘기다.

이렇게 보자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총체적 변혁이 일찌감치 예견돼 있는 올해도 임진년 징크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개연성이 크다. 한반도에 관련된 주요 국가들이 모두 혼란스러운 권력교체기에 들어섰고, 어설픈 어린 손에 맡겨진 북한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는 누구도 예측 불가다. 비상상황이 발생해도 신속하고 효과적인 국제위기 관리 및 대응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해법이 뻔하지만 다들 손에 물 묻히기를 꺼려해 세계경제를 늪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는 유로존 재정위기도 그런 사례다.

사실은 국제문제를 한가하게 걱정할 여유도 없다. 급한 건 국내상황이다. 설 연휴에 크게 화제가 됐던 'MB 외손녀 명품패딩 논란'은 이런 점에서 매우 사소하지만 상징적이다. 작은 사진 한 장으로 아이의 점퍼가 값나가는 외제품이라는 걸 알아챈 눈썰미도 그렇거니와, 이를 놓고 "또 한 건 걸렸다"싶어 온갖 비난과 조롱으로 명절 한때를 즐긴 이들도 대단하긴 마찬가지다. 중고생 명품패딩 소동에 대해선 사회구조적 문제를 따지는 자못 성숙한 인식을 보이다가도 그저 저 편에 걸친 일이라면 한 치 용서 없이 인간의 자질문제로 물고 늘어진다.

역시 사소하지만 5ㆍ18묘지에서 상석을 밟은 일로 격한 구설에 오른 여야 두 정치인에 대한 논란도 다를 게 없다. 마음을 표하려 묘비를 어루만지려다 팔이 짧아 잠깐 상석에 발을 올린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우리사회 태반의 이슈가 번번이 이렇게 하잘것없는 일에 핏대를 올리는 식이다. 이념도, 정책다툼도 아닌 서로 간에 뭐 하나 곱게 보아 넘기고 싶지 않은 뼛속 깊은 적개심이 현 우리사회 갈등의 진짜 기저임을 재확인시켜주는 섬뜩한 해프닝들이다.

이러면 남아날 건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 사회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합당한 권위도 예외가 아니다. 정봉주나 곽노현 판결, 부러진 화살 건에 대한 여러 반응에서 보듯 국가운영의 기본 틀인 법원판결마저도 인정되지 않는다. 판결조차 아무나 생각나는 대로 희화화하거나 조롱해도 되는 네티즌 의견 수준의 의제로 전락했으니 기둥 세울 버팀돌까지 다 부숴버린 격이다.

우리사회의 전방위적 불만과 적개심은 날로 몸집을 키워 바야흐로 뚜껑이 열리기 직전의 임계점에 다다랐다. 최근 10년의 정치권이 스스로의 테제를 세우기보다는 안티테제의 정치에만 몰두한 데 따른 부작용이지만, 한가하게 상투적 원인 분석에나 기대면서 핑계거리를 만들 때는 아니다. 어찌됐건 양 극의 정치세력을 진저리 나게 모두 경험한 지금이야말로 10년의 고리를 끊어내야 할 적기다. 그저 부수기보다는 최대 다수가 동의하는 가치와 권위를 만들어 세우는 방향으로 사회흐름을 돌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사회적 적개심을 방치하거나 작은 정치적 이득으로 이용하려 든다면 갈등은 감당키 힘든 양상으로 폭발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훗날 2012년을 '임진내란'의 해로 만든 역사의 죄인으로 기억될지도 모를 일이다. 파괴는 이만하면 됐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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