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시대가 길긴 길었던 것 같다. 1987년 이후 사반세기 지나도록 여전히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 구도가 먹히는 걸 보면. 아니, 일제 치하나 해방정국에나 어울릴 ‘애국 대 매국’ 구도까지 횡행하는 걸 보면 한 세기 가까운 세월이 덧없다. 정치적 수사법을 모르는 바 아니나 나라 전체를 퇴행과 정체에 가두는 폐해가 너무 크다. 이들 논리는 어떤 기준으로도 성립하지 않거나, 말도 안 되게 과장돼 있다. MB정권의 권위적 성격이 너무 강하다든가, 대외관계의 손익계산을 잘못하고 있다는 정도가 적절한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도 대상이 독재나 매국으로 틀 지워지면 어떤 반대행위도 당당한 명분을 얻는다. 국회최루탄 사건의 김선동 의원이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심정으로…”라고 말한 정서가 이것이다. 한진중공업 시위 때 여배우가 “목적을 위해선 불법수단도 정당한가?”란 질문에 “3ㆍ1운동, 4ㆍ19혁명도 불법이었다”고 한 대답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전제의 오류’ 논법이지만 이게 먹혀 드는 게 현실이다.

여전히 통하는 권위주의의 유산

당장 매일 서울도심에서 벌어지는 한미FTA 비준반대 시위에 참여하는 이들의 인식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기야 현장의 야당대표나 중진들도 ‘매국. 독재’를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하니까. 당연히 도로를 막는 불법행위나 경찰서장 폭행 따위는 문제될 게 없다. 현 정권에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반WTO 시위나 미군기지 이전반대 시위의 양상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따져보면 이 모든 게 달리 어찌해볼 저항의 방도가 없던 권위주의시대의 유산이다. 제도적 민주화를 성취, 국민이 얼마든지 정부를 바꾸고 선택할 수 있게 된 뒤에도 이 유산은 청산되지 않은 채 관행으로 굳어졌다. 아니, 의사표현의 제약이 없어지고 공권력으로부터의 위험부담이 크게 줄면서 양상은 도리어 더 격해졌다. 국회만 해도 권위주의시대에는 몸싸움, 폭언이 고작이었다. 부수고 구타하고 쇠사슬로 묶고 망치질을 해댄 행태는 다 민주화 이후의 일이다. 어찌 보면 부끄럽고 비겁한 진화다. 물론 민주화 이후 다양한 이해와 의견이 자유로운 분출기회를 얻으면서 저마다 실현욕구가 더 강해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현 시국의 핵심화두가 ‘소통’이라는 데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국회에서, 거리에서 관행이 여전한 힘을 갖는 것은 예전처럼 언로조차 막혀서가 아니라 이견의 반영통로가 폐색돼 있기 때문이다. 소통 부재와 정치 부재가 같은 의미일진대, 결국 문제는 정치다. 다양한 시중의 의견을 반영하고 조정하는 대부분의 정치행위가 입법행위를 통해 이뤄지므로 궁극적으로 정당과 국회기능의 정상화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정쟁에 묻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하려면 격렬한 반대에 치여 일방 처리할 수 밖에 없는 ‘불임국회’ ‘일방국회’의 구조가 소통 부재의 근본 원인인 것이다.

해결책은 상식의 회복이다. 민주주의 의사결정 원칙이 다수결과 소수배려라는 그 기본적 상식이다. 충분한 논의로써 조정과 합의를 도모하되, 일정 절차와 시간을 거쳐서도 끝내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표결을 통해 다수의 결정을 선택하는 것이다. 개인별 소신투표와 필리버스터 제도 도입, 합의처리 데드라인 설정 등이 상식 회복을 위한 구체적 내용들이다.

민주적 정치원칙 회복이 타개책

해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쉽지 않다. 입장이 다른 이들이 서로 입에 올리는 소통이란 게 대개는 ‘내 의견 전면 수용’의 다른 표현이기 십상이다. 독재와 매국 등 관행어 구사도 소통보다는 차단의 어법이다. 여야 모두 제법 상식을 논의하는 척 하다 끝내 작은 유ㆍ불리를 따져 그만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의 위기를 개탄하면서도 더 이상 시대착오적 관행에 기대려 들어서는 안 된다. 인적 쇄신, 통합 다 좋지만 무엇보다 이 상식의 틀을 먼저 만들지 않고는 답이 없다. 안철수든, 박원순이든 누가 정치를 맡아도 마찬가지다.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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