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 초기 여론조사결과를 찾아보면 쓴웃음이 난다. 무려 72%의 국민이 '성장정책'을 새 정부에 주문했다. '분배우선으로 복지에 치중해야 한다'는 요구는 고작 22%에 지나지 않았다. 압도적인 분배ㆍ복지 담론 속에서 누구도 감히 이견을 달 수 없는 지금의 분위기로선 '정말 그랬던가?'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겨우 4년 전 일이다.

앞서 김대중 대통령은 국가부도위기 때 등장, 쾌도난마로 경제난제들을 풀어나갔다. 자본시장 개방, 구조조정, 부동산규제 완화, 신용카드발급 확대, 벤처기업 육성 등이 당장 성과를 내면서 일약 구국의 영웅이 됐다, 그러나 겨우 2~3년 만에 국부 유출, 카드불량자 양산, 성장동력 상실, 부동산ㆍ벤처 거품론의 비난에 치여 태반의 공(功)이 훼손됐다.

신뢰할 수 없는 당대의 판단

시대의 판단이란 게 이토록 가볍다. 정책이 10년은 고사하고, 단 1~2년 안에 어떤 효과를 낼지 누구도 단정키 어렵다. 걸핏하면 들먹여지는 경부고속도로 반대사례는 지겨워 접더라도, MB 취임 초까지 대운하 지지여론이 훨씬 높았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4대강 사업의 한철 효과를 놓고 홍수조절 기능이 컸느니, 오염이 심해졌느니 하는 논쟁도 부질없다. 대차대조표를 제대로 만들려면 최소한 10년은 필요할 것이다.

한미FTA도 다를 리 없다. 이 협정이 우리경제 전반에 미칠 구체적 영향을 정확히 예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경제무역정책은 김진석 교수(인하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고난도 복합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보수의 '국익 우선'과 진보의 '자유무역 반대' 도식으로 논쟁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다들 단정적 확신을 갖고 목숨 내걸듯 싸운다. 정말 그렇게들 자신이 있는가.

한미FTA는 알다시피 전자, 자동차 등 공산품의 판매 확대를 위해 6년 전 우리가 먼저 협상개시를 선언한 것이다. 물론 당시 꼬인 대미관계를 푸는 측면이 있었음도 부인키 어렵다. 어떻든 그때 계산으론 총량적으로 남는 장사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판단도 없었다면 그것이야말로 매국행위다. 이후 상황도 별로 바뀐 게 없다. 그렇다면 필요한 건 예상피해 부문에 대한 보호 및 구제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정교한 연구와 설계가 필요한 부분이다.

가장 큰 쟁점이 돼 있는 ISD(투자자ㆍ국가 소송제도)도 마찬가지다. 세계 대부분 투자협정의 일반규정이어서 우리가 맺은 다른 모든 FTA에도 당연히 삽입됐다. 다만 이번엔 상대가 미국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쌍방 권리를 공평하게 규정했으나 반대측 우려대로 미국이 좀더 유리하게 활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ISD 포기가 곧 우리의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호주의 경우 이 대가로 상당한 자국 정부개입권한을 포기한 전례도 있다. 앞으로 우리가 상대적 우위에 선 나라와의 협정에서 거꾸로 이를 빌미로 발목을 잡힐 개연성도 있다. 이런 득실을 정밀하게 따져보는 것이 정작 지금 필요한 논쟁이다.

또 100대 0 게임 된 FTA논쟁

복잡하고 미묘한 국가정책을 놓고 논쟁하는 데서 가장 위험한 건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정치적 이념적 가치가 개입하는 것이다. 완전한 선과 악이란 애당초 성립하지 않는 개념이다. 기술적 논쟁이 가치논쟁이 되는 순간 완승완패의 결사적 게임이 된다. 한미FTA 논쟁도 이미 '애국'이니 '매국'이니 하는 치졸한 가치논쟁으로 전환됐다. 이래선 해법이 없다.

지금의 어떤 판단도 확신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그나마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조정과 절충밖에 없다. 답답해도 이게 답이다. 서로의 논거를 인정하는 기반에서, 상대가 덜어낸 만큼 제 것도 덜어내면서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만이 오직 정당하다. 정상적 사회를 구성하는 비율은 100대 0이 아니라 55대 45다. 한미FTA에 대해서도 100대 0의 확신을 주장하는 이들은 다들 지난 판단들을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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