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제2 연평해전의 기억을 되살려보기 바란다. 북한의 기습도발에 맞서 우리 젊은이들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권기형 상병은 끊겨나간 손을 방탄조끼 끈으로 묶으며 탄창들을 비웠고, 부상자를 처치하던 의무병 박동혁 상병은 직접 포를 잡고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사격을 해댔다. 후에 그의 시신에선 100여 개, 3kg의 파편이 적출됐다. 하체를 관통 당하고도 끝까지 전투를 지휘한 이희완 중위, 방아쇠를 당긴 자세로 숨져간 조천형 하사 등 모두가 경이로운 용기와 투혼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군기 약하다고 평소 해병대원들이 군인 같지도 않게 낮춰본다는 '타군'이다.

군 고위 지휘관에게 "해병대 면접에서 생활기록부까지 봐야 하나? 체력 좋고 싸움 잘하면 되지."라고 물었다. 대답은 분명했다.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 상황에서 진짜 투혼을 발휘하는 병사는 오히려 모범생 스타일에 가깝다. 학창 시절부터 책임과 규율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평소 거칠고 센 척하는 불량배형은 정작 그런 상황에선 비겁해진다. 우리뿐 아니라 숱한 전투를 겪은 미군의 경험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알고도 놔둔 병영악폐

우리 해병대는 창설모델인 미 해병대의 구호를 여럿 차용하고 있다.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같은 것이다. 지금은 특수부대 일반에 널리 쓰이지만 미 해병대의 유명한 다른 표어들도 있다. "First There,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Leave No Man Behind(전우를 뒤에 남겨두지 말라)!" 모두 희생과 책임, 피보다 진한 전우애를 고취하는 문구들이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해병대의 문제와 해법이 여기에 다 압축돼 있다. 해병대의 자부심은 강한 군기와 훈련, 끈끈한 전우애, 여기에 기반한 강한 전투력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알고들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사건들은 이런 일반의 인식이 허상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선배해병들의 빛나는 전공에 기대고 있을 뿐, 드러난 실상은 참담하다.

정확히 학교왕따문화 세대의 입대시기와 맞물려 2000년대 들어 생긴 기수열외는 전우애 단어가 민망한 비겁한 인격살인이다. 그뿐인가. 전역병들에게 듣는 일상적 가혹행위들은 군기, 전투력과는 아무 관계없는 선임병들의 가학적 취미생활에 가깝다. 후임병에게는 어떤 모멸적 행위를 가해도 괜찮다는 문화는 전우애가 아닌 분노와 적개심만을 키운다.

기막힌 건 "모르고 지원했나?"고 되묻는 일부 예비역들이다. 지원자들이 각오하는 건 혹독한 훈련과 과업, 엄정한 기강이지 쓰레기취급이 아니다. 후임 때의 피학경험을 선임이 돼 가학으로 보상받은 추억만 달콤하게 되씹는 그들이야말로 해병대 발전을 가로막는 적이다. "공부 잘하는 나약한 자원만 뽑아 정신력이 약해졌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총기 난사, 자살 관련병사들의 남다를 것 없는 학력이나 출신교를 살펴보았다면 그런 억지를 쓸 수 없다. 해병대다워지려면 그럼 폭력배들이라도 뽑아야 한단 말인가?

관리 잘못에 병사들이 죽어가도

무엇보다 납득할 수 없는 건 해병대 지휘부다. 총기난사사건 관련병사들은 사실 모두가 피해자다. 그런데도 선임의 불평에 어쩔 수 없이 맞장구 쳐주고 명령에 따른 시늉만 한 어린 이병은 살인혐의를 받아 정상적인 인생을 마감할 처지에 놓였다. 반면 해병대에서 평생을 보낸 사령관 등은 마치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한 태도다.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고도 방치했다면 책임 회피에 직무유기다. 더욱이 전투도 아닌, 평시의 관리 잘못으로 부하들을 희생시키고도 자리에 연연하는 건 전혀 해병대답지 않다. 마땅히 고개 숙여 사죄하고 주저 없이 책임지는 것이 명예로운 처신일 것이다.

익히 아는 해병대의 훌륭한 전통을 굳이 또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러고도 바뀌지 않는다면 더 이상 지금까지와 같은 국민적 지지와 갈채를 기대하지는 말라. 그건 해병대의 명성을 만든 숱한 선배들의 희생을 욕보이는 일이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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