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탄생/전우용 지음/이순 발행·344쪽·1만5,000원

성병 결핵 나병이 3대 망국병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해방 이후 6ㆍ25전쟁기까지 한국 사회는 전대미문의 혼란기를 겪었고, 한국인의 몸도 온갖 질병과 세균으로 고통당했다.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쓴 <현대인의 탄생>은 해방 이후 6ㆍ25전쟁 종전까지 8년 동안 한국인이 겪어 내야 했던 질병과 이를 치료한 의료에 대한 기록이다. 세계 각국에서 의료 쇼핑을 하러 올 만큼 의학이 발전한 지금의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던 60여년 전의 질병과 의료 실태를 정리했다.

해방 후 해외에서 돌아온 230만명, 북한에서 월남한 50만명, 좌익폭동과 빨치산 활동으로 생겨난 전재민 80여만명으로 서울과 주요 도시들은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제강점기 때의 미미했던 의료 체계마저 붕괴됐다. 위생이나 보건 문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당시의 기록을 살펴본다. 1946년 2월 경북 선산군에서는 두창 티푸스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성홍열이 동시에 발생했다. 3월에는 한반도에서 한 번도 없었던 페스트가 강원 춘천시에 침투했고, 5월에는 부산에서 콜레라가 발생해 불과 두 달 만에 전국에서 3,30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11월에는 서울에서 두창이 유행했다. 48년에 태어난 44만명의 아기 중 돌을 넘기지 못한 수가 18만명으로 무려 40%에 달했다. 해방 직후 일본인들이 시중에 풀어 버린 생아편과 모르핀으로 마약 중독자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49년 정부는 나병 결핵 성병을 3대 망국병으로 지목하고 추정 실태를 발표했다. 나병 환자는 4만명에 1만4,000명이 수용돼 있었고, 성병 환자는 업태부만 5만여명이었다. 결핵은 해방 이후 급증했는데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대책이 무엇이냐는 기자단의 질문에 당국자가 "노력하고 있으나 예산이 없다"고 답했다.

6ㆍ25전쟁은 재앙이었다. 51년 보건부 조사 결과, 국민의 99%가 영양부족 상태였다. 영양실조와 기생충 감염으로 빈혈 설사 피부염이 국민병이 되었고 천연두 티푸스 콜레라 말라리아 결핵 일본뇌염은 풍토병이 됐다. 수십 년간 한국인을 괴롭혔던 간염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 6ㆍ25전쟁 중 주사기 하나로 수십 명에게 예방주사를 놓으면서부터였다. 미군의 한 간호장교는 한국을 "책에서만 보던 질병의 왕국"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 식민 당국은 한국인에게 근대 의학의 혜택을 그다지 베풀지 않았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민간요법에 의존하거나 무당을 찾았다. 그러다 6ㆍ25전쟁에서 다치면 페니실린부터 맞은 군인들의 경험이 민간에 전파돼 약에 대한 환상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민간요법에서 약초를 쓰듯 서양 약을 찾았다. 약에 대한 맹신, 항생제 남용 같은 요즘 한국 사람들의 의약품에 대한 태도도 이때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학의 시선으로 자기 몸과 주변 환경을 살피는 현대 한국인이 이때 탄생한 것이다.

우리의 선배 세대들이 참으로 모질고 어려운 시절을 견디고 살아 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정말 생생하게 보여 준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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