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최고봉은 백운대(836m)다. 백운대 정상에 서서 사위를 돌아볼라치면 바로 지척에 솟아있는 인수봉(810m)이 한뼘쯤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봉에 올라서 있는 사람이 보다 대단해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인수봉 정상에서 백운대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비록 보다 낮은 곳에 서 있지만 상대적으로 우쭐하고 뿌듯한 느낌을 만끽하기 마련인 것이다. 문제는 고도가 아니라 난이도라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백운대 하나만으로 문제를 좁혀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백운대에 오르는 방법에는 여러 갈래가 있다. 가장 손쉬운 일반적 루트는 위문에서부터 정상까지 연결되어 있는 쇠밧줄을 붙잡고 올라가는 것이다. 보다 어려운 루트로는 인수봉과 마주보는 바위 능선의 호랑이굴 크랙을 통과하는 길을 꼽을 수 있다.

절경으로 유명한 원효리지를 타고 오르면 짜릿한 암릉등반의 묘미를 마음껏 즐긴 다음 정상에 가 닿을 수도 있다. 백운대 남면에 나 있는 ‘신동엽길’이나 ‘녹두장군길’은 암벽등반 루트 중에서도 난이도와 공포감이 높은 길로 정평이 나 있다.

다만 백운대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라면 쇠밧줄을 붙잡고 올라가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굳이 호랑이굴 크랙이나 원효리지나 녹두장군길을 이용하여 오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뭔가. 그들은 미련한 바보들일 따름인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정상이라는 ‘결과’보다는 그곳에 이르는 ‘과정’을 더욱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보다 어려운 방식’으로 오르는 것이야말로 등반의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머메리즘’이라고 한다. 머메리즘이란 간단히 말해서 ‘머메리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창시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앨버트 프레드릭 머메리(1855~1895)다.

머메리즘의 출현은 알프스 황금시대의 종언과 깊은 관련이 있다. 등반 사학자들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알프스에서의 황금시대란 대체로 19세기 중엽을 지칭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1854년 앨프리드 윌스가 베터호른을 초등한 시기부터 1865년 에드워드 윔퍼가 마터호른을 초등한 시기까지를 뜻한다.

이 10여년의 세월 동안 4,000m가 넘는 고봉 60개를 포함하여 모두 149개의 알프스 봉우리들이 초등되었다. 그야말로 눈에 띄는 봉우리란 봉우리에는 모두 다 사람들이 올라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초등의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며 ‘등반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한 사람이 바로 머메리다.

그가 주장한 것은 “보다 어렵고 다양한 루트(More Difficult Variation Route)”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 남들과는 다른 길로 올라라. 보다 어려운 루트로 오르는 것이 보다 가치 있는 등반이다.

지도를 보거나 가이드를 따라 오르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다. 그 누구도 도전해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며 굳이 가장 어려운 루트를 선택하여 오르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알피니즘의 핵심이다.

머메리의 주장은 전복적이고, 위험하며, 매혹적이다. 하지만 머메리즘 덕분에 후대의 산악인들은 무한한 개척등반 및 초등의 가능성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 호랑이굴 크랙과 원효리지와 신동엽길이 탄생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머메리는 목소리만 높일 줄 아는 책상물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직접 행동에 옮겨 숱한 루트를 손수 개척 등반했다. 마터호른의 초등자는 물론 에드워드 윔퍼다. 하지만 즈무트능선을 통한 마터호른의 초등자도, 푸르겐능선을 통한 마터호른의 초등자도 모두 머메리였다. 이 놀라운 발상의 전환은 이후 알피니즘의 역사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어디에 올랐느냐보다는 어떻게 올랐느냐를 더욱 중시하는 현대등반의 역사는 곧 머메리즘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산악계의 큰 어른인 김영도의 다음과 같은 명제도 그 뿌리는 머메리즘에 가 닿아 있다.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다!”

청년 머메리는 당대의 반항아였다. 하지만 이후 세대에게 그는 엄격한 잣대이자 든든한 맏형이 되었다. 머메리즘이 반드시 등반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따금씩 너무 타성에 젖어 남들이 닦아 놓은 길, 빤해 보이는 쉬운 길만을 따라가려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머메리는 예의 그 매서운 눈길을 부라리며 단호하게 쐐기를 박는다. 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앞으로 나아가라.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이다.

▲ 8,000m급 낭가파르바트 최초 등반 중 사라져

앨버트 머메리는 히말라야 8,000m급 산에 도전장을 내민 최초의 산악인으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40세가 되던 1895년 6월, 그의 유일한 산악문학 저서가 된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다음, 인도의 봄베이로 떠났다. 당시로서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낭가파르바트(8,126m)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전인미답의 경지였으니 제대로 된 정보나 지도가 있었을 리 없다. 그는 두 차례나 등정시도를 했으나 모두 좌절한 다음 새로운 루트를 찾아보기 위하여 또 다른 능선을 넘어갔다. 당시 그가 부인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인상적이다. “설령 낭가파르바트에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 거대한 봉우리를 보고 훈자와 러시아 국경 저편에 있는 위대한 산들을 바라보았으니, 후회는 없소.”

그 이후 머메리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다. 최초의 도전자이자 최초의 희생자가 된 셈이다. 19세기의 산악문학을 대표하는 그의 명저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의 마지막 구절은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고 있는듯 하다. “등산가는 자신이 숙명적인 희생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산에 대한 숭앙을 버리지 못한다.”

산악문학작가 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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