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한류를 넘어…아시아 문화 허브로] (5) 한국적 스타일이 아시아를 바꾼다

알림

[한류를 넘어…아시아 문화 허브로] (5) 한국적 스타일이 아시아를 바꾼다

입력
2006.01.16 09:08
0 0

호치민의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예비 신부 람(22)씨는 올해안에 서울에서 코 성형수술을 받을 생각이다. 1억1,250만동(720만원) 드는 성형 수술 비용을 마련하려고 2년 전에 적금도 들었다. 이 같은 수술비용은 베트남 대졸 근로자 평균임금의 3년치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이다.

호주나 싱가포르에 가면 비용이 더 저렴하지만, 굳이 한국을 고집하는 까닭은 ‘TV 드라마 속의 한국 여성 같은 코를 갖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 때문이다. 그는 “2004년에 톱 가수 ‘미땀’이 한국에서 코 성형을 받고 온 이후 하노이와 호치민의 부유층 여성들 사이에 코 성형이 유행”이라고 말했다. 호치민에서 메이크업 강사로 활동 중인 김인영씨는 “수강생 10명 중 2~3명은 꼭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하는 비용과 방법에 대해 물어 온다”며 “중국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한국식 성형이 커다란 인기를 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류 미용

한국식 성형의 원조인 중국에서는 비뇨기과에까지 ‘한류바람’이 불었다. 베이징(北京) 시내의 비뇨기과 전문의원 ‘북경영재의원’은 ‘한·중 합작 진료’를 강조한다. 이 병원의 왕아이동(王愛東) 주임은 “한국식 성형이 유행하면서 남성 비뇨기과 수술도 한국 전문의가 집도해 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북경영재의원은 최근 이러한 ‘한류’ 마케팅으로 중국 전역에 20여개의 비뇨기과 클리닉을 열며 대박을 터뜨렸다. 한국식 성형의원은 최근 대만에도 상륙, 타이베이 시내에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한국 미인’이 아시아 대표 미인으로 떠오르면서 한국 화장품도 주목 받고 있다. 타이베이(臺北) 미츠코시(三越), 상하이(上海) 시티플라자, 싱가포르의 이세탄(伊勢丹) 등 아시아 주요 도시의 최고급 백화점에 가면 태평양의 ‘라네즈’ 브랜드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 회사 대만 법인의 이종현 과장은 “한국 화장품의 인기는 ‘한국식 화장 기법’과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통해 한국식 화장이 선보이면서 자연스레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는 것이다. 한류 미용 바람에 편승, 일본 화장품 업체 DHC는 한국의 인기연예인 김희선을 대만과 중국에서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식 먹거리

베이징 궈바오(故北)에 위치한 까르푸 매장에서는 중국인의 식생활에 파고든 한국 음식의 위상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라면 코너에는 ‘신라면’이 가득하고, 한국식 간장과 고추장은 물론이고 반찬코너에 가면 한국식 김치 2종이 다른 중국 전통 음식과 어울려 절찬리에 팔리고 있다. 아시아문화산업교류재단의 윤향란씨는 “최근까지 김치는 포장김치가 전부였는데, 중국 절임 음식을 파는 코너에서 김치를 보는 것은 의외”라며 놀라워 했다.

불판에 고기를 구워주는 한국식 고깃집 ‘서라벌’은 94년 문을 연 이래 베이징 시내에만 7개의 지점을 운영중이다. 한국인을 주로 상대하는 다른 한국 음식점과 달리, 서라벌은 손님의 80% 이상이 현지인으로 중국인의 입맛을 공략해 성공했다. 베트남 호치민에는 무려 200여개의 한국 음식점들이 성업 중인데, 현지인들이 테이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교포 김창수씨는 “아예 베트남 사람들 입맛에 맞게 변형된 ‘퓨전’식의 한국음식을 선보이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호치민의 최고급 백화점 다이아몬드 플라자 곁에 위치한 한국 음식점 ‘대장금’에서는 1인분에 10만~15만동(6,500~1만원)하는 비싼 한식 상차림 메뉴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이 같은 가격대는 대졸 근로자의 하루 일당보다 비싼 것이다.

엔터테인먼트

한국 음악과 영화, 드라마는 이미 아시아인들의 보편적 대중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중화권 한류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대만에서는 2005년 주요 TV 채널의 한국 드라마 방영 시간이 연간 1,000시간을 훌쩍 넘었다. 일본 NHK의 위성방송인 ‘BS2’ 채널에서는 목요일 저녁 오후 8시부터 11시까지 ‘대장금’ ‘다모’ 등 한국 드라마를 집중 방영하는 ‘한국 드라마 시간’을 운영한다.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중동에까지 이어졌다. 지난해 ‘겨울연가’가 방영된 이집트에서는 방송 시간마다 거리가 쥐죽은듯 썰렁해지면서 ‘드라마 통금’(TV show curfew)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베트남에서 가라오케는 한국 문화로 인식된다. 들여온 것은 일본인이지만, 주로 한국인들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가라오케를 통해 ‘폭탄주’도 전파됐다. 맥주 한 잔에 찹쌀 보드카 ‘넵머이’(nep moi) 한 잔을 빠뜨려 우리식 ‘원샷’에 해당하는 ‘보짬’ 신호에 맞춰 들이키는 것이 베트남식 폭탄주다. 이 밖에 대만에서는 ‘리니지’ ‘열혈강호’ 등 한국 게임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자 한국처럼 일부 청소년들의 게임 중독과 현금 아이템 거래 등이 새로운 학교 문제로 등장했다.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로

문화의 전파는 사회· 경제적 변화를 수반한다. 또 새로운 삶의 양식과 가치관을 형성하기도 한다. 한류 역시 아시아 각국?‘한국적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늘날의 ‘글로벌 문화’는 상당 부분 미국 문화가 세계화한 결과물”이라며 한류 역시 일시적 문화 현상에서 끝나지 않고 ‘신 아시아적 가치’(New Asian Value)로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문화는 헐리우드 영화와 록앤롤을 타고 햄버거, 통기타, 콜라, 청바지라는 모습으로 확산됐다. 1960~70년에는 이들 문화가 전후 세대의 문화로 자리잡으면서 오늘날 국제적인 삶의 양식을 형성했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부르디외는 아예 “(미국적 생활 방식은) 효율성의 추구와 자본주의 가치의 숭배, 자유주의적 행동 양식 등을 합리화하는 가치구조의 기반이 됐다”고 역설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순봉 부사장은 “한류가 지금처럼 일방적인 전파 경로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아시아 곳곳의 지역적 전략에 맞춤형으로 접근해 한류 지속화에 성공한다면 한국 문화가 아시아의 공통분모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 "베트남 여성들 한국식으로 화장하죠"

김인영(36)씨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알아주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각광받고 있다. 1998년 건너와 8년째 화장술과 바디페인팅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베트남을 찾게 된 계기는 당시 화장품 업체 ‘도도’가 시장 개척을 위해 마련한 메이크업 쇼에 참가하면서부터.

김 씨는 “처음 왔을 때 베트남에는 ‘화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더운 날씨와 오토바이 매연 때문에 화장이 금새 더러워지는데다, 여성의 치장을 ‘자본주의적 폐습’으로 모는 분위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당시 베트남 방송국에서 한 듯 안 한 듯 가벼운 한국식 ‘내츄럴 화장’을 선보였는데 ‘너무 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제는 한국식 화장이 호치민 여성들의 기본 화장이 됐다”며 “베트남의 화장 문화는 나를 비롯한 한국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정착시킨 셈”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호치민 시내 1구역에 자리한 MBC문화센터에서 화장술 강의와 실습을 맡고 있다. 1개반에 15명씩 총 10여개 반을 운영하면서 1년~1년 6개월 짜리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껏 배출한 제자가 1,000명이 넘는다. 그는 “일본인을 비롯해 외국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지만 학원을 여는 경우는 한국인들 뿐”이라고 말했다.

클리오, 엠라인, MBC아카데미 등 베트남에서 유명한 미용 학원은 모두 한국인이 설립한 것들이다. 현재 호치민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10여명에 이른다.

한국 화장품이 베트남에서 성공한 것도 이 같은 이유가 크다. 김 씨는 “한국 화장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산 화장품을 쓰게 된다”며 “여기서 미용 관련 기술과 소품은 한국 것을 최고로 쳐준다”고 강조했다.

이곳 강습생들은 처음 등록과 함께 우리 돈 수십 만원이 넘는 한국산 화장품과 도구 세트를 구입하는데, 보통은 처음 손에 익은 제품을 계속 쓰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