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태조왕건'의 김혜리그녀는 최후에 웃는 자가 승리자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KBS가 ‘왕과 비’ 후속으로 4월 1일부터 방송할 역대 최대 스케일의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여주인공 김혜리(30).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그녀는 KBS가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강비 역에 강수연, 김지수를 섭외했으나 불발로 끝나 자신으로 결정된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동양적 분위기가 아니다. 길고 가는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 가는 얼굴선은 그녀를 세련된 도회적 이미지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딱부러지는 말투, 시원시원한 행동 역시 서구적인 색채를 강하게 풍겨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4일 방송한 KBS TV문학관 ‘길은 그리움을 부른다’에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는 그런 캐릭터가 제 격이라고 생각한다. 방송가에서도 마찬가지다. 1991년 KBS 일일극 ‘그리고 흔들리는 배’를 시작으로 그녀는 주로 멜로물과 트렌디물에서 신세대여성 아니면 커리어 우먼으로 기용됐다.

인터뷰 도중 깔깔 웃다가 이내 힘들거나 슬픈 표정으로 돌변하는 속도가 빠르고 극과 극의 감정을 오르내리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극에 제법 잘 적응하는 원천이다.

그녀는 연기생활이 5년쯤 접어들자 자신을 가두고 있는 고착화한 서구적 이미지의 성채에서 한번쯤 벗어나고 싶었다. 1995년 KBS 대하사극 ‘조광조’에서 중종 부인 신씨 역이었다. 쪽진 머리, 한복 차림의 김혜리의 끼가 사극에서 발산되는 순간이었다.

긴 대사, 선이 굵어야하는 연기, 표정처리 등 사극에서 그녀를 곤혹스럽게 하는 장애들을 몸으로 부딪치면서 사극의 정형성을 익혀 나갔다. 현대물과 달리 사극은 연극적 연기력이 강하게 요구되는 장르다. 또한 연기 동선이 크되 부자연스럽지 않아야 하는 이중의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이미지로 벼락 스타가 된 연기자들은 사극 출연을 꺼린다. 연기력의 한계 때문에.

김혜리가 비로소 물을 만난 것은 KBS 대하사극 ‘용의 눈물’이다. 본처 민씨(최명길)의 몸종으로 출발, 태종의 후궁까지 오르는 역을 해냈고 곧바로 ‘왕과 비’ 에선 문종을 키우는 혜빈 양씨 역을 소화했다.

약점은 있다. 카리스마의 부족이다. 사극의 주연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는 카리스마다. 강한 성격을 바탕으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권위적인 분위기를 분출해야 하는데 김혜리는 그런 분위기를 표출하지 못했다.

또 한번의 기회가 왔다. ‘태조 왕건’에서 김혜리가 맡은 강비 역의 소화 여부에 따라 그녀는 대스타로의 비상을 꿈 꿀 수 있다. 강비는 왕건의 연인이지만 궁예의 아내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온화하고 사리에 밝지만 야심있는 여인이었다.

호쾌하게 소주 한 잔을 들이키며 던진 한 마디. “연기생활 10년째인데 김혜리의 드라마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태조 왕건’은 김혜리로 인해 떴다는 평가가 나왔으면합니다.”

■ Who?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혜리는 1988년 서울 여의도 여고를 졸업했다. 1988년 재수하던 시절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선을 차지했다.

세련된 무대매너를 보여주었던 김혜리는 KBS ‘쇼 특급’ 진행자로 발탁됐고 1991년 KBS 연속극 ‘그리고 흔들리는 배’로 연기에 입문했다. 다음해 KBS 신인상을 수상하며 수십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1991년 소설 ‘미완의 바람’으로 한국문학상을 수상한 어머니 조수비씨가 어머니.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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