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무계하고 씁쓸하다. KBS 드라마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19일 막을 내린 주말극 ‘사랑하세요?’는 KBS 드라마의 총체적 문제의 축소판이었다.이 드라마는 우선 급조된 기획 의도와 제작 준비가 얼마나 부실한 드라마를 만드는지 또 한번 입증했다. 철저한 기획과 준비는 드라마의 완성도와 직결된다. 요즘 KBS 드라마는 기획을 해놓고도 방송에 임박해 갑자기 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로 인해 연출자와 작가는 드라마의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형제간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가족의 화해를 그리겠다는 ‘사랑하세요?’ 기획 의도는 동생 역의 김민종의 중도퇴진 등으로 극의 구성이 헝클어지면서 완전히 상실됐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월·화 드라마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역시 급조된 상황에서 극의 구성이 엉성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은 ‘사랑하세요?’와 다를 것 없다.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대본에 크게 좌우된다. 작가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 탄탄한 대본은 드라마의 절반의 성공을 담보한다. 최근 KBS 월·화 드라마 ‘마법의 성’ ‘나는 그녀가 좋다’의 실패는 상당 부분 작가에 기인한다. ‘사랑하세요?’는 작가의 역량 부족이 눈에 띄게 나타났다. 1960년대에나 통용될 법한, 착하지만 능력없는 형과 이기적인 영리한 동생이라는 진부한 형제구도, 출세를 위해 사랑하는 여인을 버리고 부유한 여자를 선택한다는 상투적인 줄거리로 2000년의 시청자 눈길을 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었다. 19일 마지막 방송분은 우연과 황당무계의 극치였다. 온갖 못된 짓을 한 최종원은 갑자기 개과천선하는 등 개연성 없이 모든 상황을 화해와 용서로 끝맺었다. 억지 춘향이식이다.

캐스팅의 난조도 ‘사랑하세요’의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요즘 스타급 연기자들은 KBS 드라마 출연을 기피하는 것이 사실이다. 출연료가 많은 것도 아니고 인기가 높은 드라마라는 확신도 없기 때문이다. 주연인 김민종이 스케줄을 이유로 중도에 그만둠으로써 구성과 내용이 완전히 우스운 방향으로 전개됐다. ‘나는 그녀가 좋다’의 경우는 방송 일주일 전에야 남자 주연 탤런트를 캐스팅하고, 대하 사극 ‘태조 왕건’은 몇개월간의 작업을 거쳐 방송 한 달 전 에야 겨우 여주인공(김혜리)을 결정했다. 이렇게 급조된 캐스팅은 연기의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은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여기에 연기력 없는 탤런트들의 출연은 시청자의 짜증만을 불러왔다.

KBS 드라마에 대한 책임을 연출가도 피해갈 수 없다. KBS가 타방송사의 드라마 제작 환경에 비해 열악한 점은 인정되지만 ‘사랑하세요?’처럼 종반부로 치닫으면서 무성의한 화면으로 일관하는 것은 연출을 포기한 듯한 인상마저 풍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정체성 상실이다. 지향해야 할 드라마의 방향이 없다. ‘사랑하세요’처럼 무엇을 시청자에게 보여주고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드라마만을 강요한다. 수신료를 내고 있는 시청자는 KBS의 건강하고 작품성 높은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한다.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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