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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칼날 위에 선 진보

입력
2019.04.1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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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공동행동 등 진보 단체 인사들이 1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중공동행동 등 진보 단체 인사들이 11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진보의 입장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 2년은 아쉬움이 크다. 경제, 정치, 복지 개혁 등 정권 초기에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국민이 체감할 정도로 진척되지 못한 상태에서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되자 문재인 정부의 개혁 동력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도 급변하고 있다. 재기가 어려울 것 같았던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위협하고 황교안 대표는 여권 유력 주자들을 제치고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긍정과 부정 사이를 오차범위 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정국은 내년 총선은 물론이고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진보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자니 자유한국당이 어부지리를 할까 두렵고, 잠자코 있자니 촛불항쟁으로 모처럼 얻은 개혁의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아 두렵다. 더욱이 천만이 넘는 시민의 항쟁으로 탄생시킨 정권에서도 개혁을 이루지 못한다면, 보수의 바람대로 한국 사회에서 개혁이 가능한지에 대한 근본적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지난 11일 일부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와 원로들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문재인 정부의 소극적 개혁 행보를 거칠게 비판했다. 반면 일부는 침묵하며 전략적 인내를 하고 있는 듯하다. 진보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전략적 고려 없이 개혁의 대의를 주장해야 하는 것일까? 설령 그것이 원하지 않는 세력의 집권을 돕는 원치 않는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눈앞에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 올곧음이야말로 진보의 존재 이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결심하기 전에 분명히 할 것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자유주의 정부이지 진보정부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보수정부에 비해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일제강점기 이래 한국 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진보의 유산을 계승한 정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문재인 정부는 진보가 탄생시킨 진보의 정부도 아니다. 촛불 전체를 진보의 힘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진보는 스스로 수권 세력이 될 수 있는 정치적 기반과 역량을 아직 갖고 있지 않다. 물론 자유주의 세력도 독자 집권할 정치적 기반과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자유주의 세력도 진보의 도움 없이는 보수를 이기고 집권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진보와 자유주의 정부가 취할 입장은 분명해진다. 진보가 한 발짝이라도 개혁의 걸음을 내딛고 싶다면, 달갑지 않겠지만 자유주의 정권과 타협해야 한다. 자유주의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권을 보수에 넘기고 싶지 않다면 진보에 양보할 것은 양보해야 한다. 설마 문재인 정부가 잘못된 길을 가도 진보는 보수를 지지할 수 없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촛불을 함께했던 신의를 깨는 일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노무현 정부 시기에 보았던 것처럼 정권을 보수에 넘기는 참혹한 결과로 돌아올 것이다.

그런 일이 재현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할 일은 정권 후반기를 관리하는 일만이 아니다. 국정과제를 추진했다고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진보와 함께할 수 있는 개혁과제에서 분명한 성과를 내야 한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자유주의 정부가 할 수 없는 개혁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보다,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개혁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공정한 경제 질서를 만드는 기본적인 자유주의 개혁조차 혁명을 하는 것처럼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길이 자유주의와 진보, 그리고 한국 사회 모두가 사는 길이다. 진보가 칼날 위에 서 있지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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