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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박종철 벤치

입력
2019.04.10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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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을 맡은 김서경 김운경 부부 작가의 ‘박종철 벤치’ 스케치(위)와 쿠바 아바나의 관광 명소인 ‘존 레넌 벤치’.
제작을 맡은 김서경 김운경 부부 작가의 ‘박종철 벤치’ 스케치(위)와 쿠바 아바나의 관광 명소인 ‘존 레넌 벤치’.

쿠바 아바나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명소가 있다. ‘존 레넌 공원’이다. 그의 사망 20주기인 2000년 12월 8일 만들어졌다. 존 레넌은 쿠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본주의 나라 가수다. 영국 록밴드 비틀스의 멤버인 레넌은 베트남전을 반대한 평화운동가였다. 쿠바인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혁명과 전쟁으로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했다. 이 공원의 상징은 ‘존 레넌 벤치’. 벤치에 앉아 있는 레넌 청동상 발에는 그의 노랫말이 적혀 있다. ‘너는 내가 몽상가라 할지 모르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야.’

□ 1987년 1월 서울 신림동 하숙집에서 경찰에 연행된 스물두 살 청년 박종철(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은 몇 시간 뒤 싸늘한 주검으로 역사의 무대에 떠올랐다. 6월 민주항쟁의 불씨였다. 그를 기리는 ‘박종철 벤치’가 6월 10일 서울대에 들어선다. 84학번 친구이자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중심이 됐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84학번 김서경 김운경 부부 작가가 제작을 맡는다. ‘박종철을 기억 속에서만 아니라 책 속에서만이 아니라 벤치에서 만나서, 곁에서 바라보며, 함께 쉬면서 대화하고 싶습니다.’(박종철 벤치 제작 추진위원회)

□ 관악구청은 2018년 1월 박종철의 하숙집이 있던 신림동 녹두거리에 100m 길이의 ‘박종철 거리’를 조성했다. 그가 애창곡 ‘그날이 오면’을 부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벽화와 얼굴을 새긴 동판이 거리를 장식했다. 서울대 인문대와 중앙도서관 사이에는 1997년 추모비와 흉상이 설치됐다. 박종철을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추모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나아가는 자 시간을 알고 역사를 느끼며, 그 너머 죽음을 가슴에 미리 새긴다. 그렇게 우리는 희망보다 희망의 나이를 생각한다…’

□ 박종철의 아버지 고 박정기 선생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아들의 추모비를 찾았다. 묵묵히 주변을 청소한 뒤 아들 흉상을 하염없이 바라봤다고 한다. “여기만 오면 다른 분들에게 미안해요. 민주화 운동으로 죽은 이가 여럿 되는데, 우리 종철이만 이렇게 비까지 세웠으니 정말 죄송해요.” 벤치는 앉아 쉬면서 하늘을 바라볼 수도, 명상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어떤 후배는 박종철과 얘기를 나눌지도 모른다. 6월 항쟁이 없었으면 촛불혁명도 없었을 게다. 박종철 벤치는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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