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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대지의 화장

입력
2019.04.11 04:40
수정
2019.04.11 10: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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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언젠가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앞에 앉은 여성이 가는 내내 화장하는 것을 보면서 참 지나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화장을 드러내놓고 하는 것이 생경스러워 그리 생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해도 그렇게 길게 하는가! 이것은 자기도취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옛날에 여성들의 화장은 자기 집 안방의 경대 앞에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자기 아내의 화장이나 어머니의 화장하는 모습은 볼 수 있어도 다른 여성이 어떻게 화장하는지는 남성들이 볼 수 없었지요. 그러니까 자기 가족이 아닌 여성은 화장 이후에나 볼 수 있었고 화장하는 모습은 드러내지 않고, 밖에서 할 경우에도 아마 화장실에 가서 하거나 그럴 수 없을 경우 돌아서서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화장도 옛날에는 숨기는 하나의 신비주의였고, 화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천박하다고까지 할 수는 없어도 고상하지는 않은 것으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화장하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화장한 다음의 모습을 보고서 그 아름다움에 대한 반응이랄까 평가를 또 속으로 합니다. 참 아름답다, 참 신비하다, 참 맑다, 참 고상하다, 참 천박하다 등… 그래서 어렸을 적 별로 화장품이 없고, 있어도 화장을 별로 진하게 하지 않을 때 누군가 입술을 너무 빨갛게 바르고 나오면 “쥐 잡아 먹고 나왔냐”고 한마디 하는 소리를 듣기도, 화장을 짙게 하고 다니면 화류계 여자라고 속으로 오해하기도 하였지요.

저도 봉건주의적인 남자인데다 일찍 수도원에 들어와 살다보니 화장한 여성의 아름다움은 좋아하면서도 화장하는 것을 낮춰 보는 이중성과 교만이 있었는데 낮춰 보는 그럴듯한 이유가 바로 ‘내면을 아름답게 가꿔야지 겉만 그렇게 가꾸면 되겠느냐’고 하거나 ‘속이 든 것이 없으니 겉을 화려하게 한다’는 등, 제멋대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생각을 바꾸는 일이 있었습니다. 옛날에 신발 속에 발을 감춰 발의 모습을 보지 못하다가 발을 드러내는 신을 신으면서 발톱에도 예쁘게 색을 칠한 분을 보고 어떻게 발도 화장을 하는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 제가 마라톤을 뛰고 난 뒤 제 발을 주물러 주다가 처음으로 수고했다며 제 발에게 말을 건넨 적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발이 참 수고가 많습니다. 하루 종일 그리고 일생 그 무거운 몸뚱이를 지고 다니니 얼마나 힘들고 마라톤까지 하여 혹사를 하니 얼마나 고생이 심합니까? 그럼에도 발은 손이나 다른 데보다 더럽고 냄새 나는 것이어서 신발과 양말 속에 감추어야 하는 것이고, 씻을 때도 손이나 얼굴은 오래 그리고 정성껏 씻지만 발은, 저만 그런지 모르지만, 대충 씻어 주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 발이 정말로 고맙고 다른 한편으로 발에게 너무 잘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목욕을 할 때 발을 전보다 정성껏 닦아 주기 시작했고, 여성들이 발을 예쁘게 하고 나오면 저분은 발도 사랑하는 분이구나 하고 좋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화장은 분명 자기를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그렇습니다. 자기를 포기한 사람이 화장 하지 않는 것을 보면 확실히 화장은 자기 사랑입니다. 비록 속 모습을 더 아름답게 치장하는 사람이 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속 모습, 겉 모습 따지지 않고 자기를 가꾸는 것은 자기를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화장은 자기 사랑만이 아닙니다. 화장은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요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냄새 나거나 말거나, 불쾌감을 주거나 말거나 내 편한 대로 하는 것에 비하면 화장은 배려요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요즘 꽃들로 대지가 화장을 하여 봄이 참으로 화사합니다. 인간에 대한 자연의 사랑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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