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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언어번역기] 정권에 맞서 죽기를 각오한다는 황교안

입력
2019.04.10 09:00
수정
2019.04.10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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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장관 임명을 비판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8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장관 임명을 비판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죽을 각오로 맞서겠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김연철 통일부 장관과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그대로 임명하자 “결사의 각오로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것이다.

 ◇투사가 되고 싶은 황교안 

지난 2월 27일 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황 대표의 발언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당대회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부당하다는 주장으로 논란을 일으키더니, 그 뒤로도 현 정부를 향한 독기를 더 거칠게 드러냈다.

“문재인 정권의 좌파독재로 경제도, 안보도, 민생도 모두 무너지고 있다.” (지난달 5일 첫 의원총회)

“충무공이 살아있다면 이 정권을 심판하라고 명령했을 것이다.” (지난 2일 경남 통영 4ㆍ3 보궐선거 유세 현장)

“민주노총이 국정농단을 일삼아, 대한민국은 민주노총공화국이 됐다.” (지난 4일 당 최고위원회의)

하긴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한 것 자체가 현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취지였다. 그러더니 황 대표의 입에서 ‘결사 저항’이라는 말까지 나온 것이다.

이 같은 황 대표의 태도는 무척 낯설다.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시절,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의 어떤 질타나 비판에도 흥분하지 않고 시종일관 낮은 어조로 응수하던 그였다. 이 같은 태도 때문에 내용과 상관 없이 그의 답변을 칭찬하는 여론도 있었다.

왜 달라졌을까. 황 대표는 야당사령탑으로서 정체성을 ‘투사’로 상정한 듯 하다. 투사가 된 그가 내세울 무기는 말뿐이다. 현역 국회의원이 아닌 당 대표가 대외적으로 가진 실질적인 권한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경 발언을 해야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당내에서야 차기 총선의 공천권을 휘두를 수 있기에 이미 황 대표에게 의원들이 줄을 선 상태지만 말이다.

 ◇벌써 최후의 수단을 

그러나 죽기를 각오하는 건 비상한 사태에나 내뱉을 말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인권유린과 폭거에 맞선 민주화 투사들은 진짜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의 뒤에는 국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김영삼(YS)과 김대중(DJ)이 정권의 핍박에도 죽음을 각오하고 결기를 잃지 않았기에 결국 국민은 이들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투사도, 영웅도 절대악이 존재해야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처신이 과연 독재정권에 빗댈 만큼의 폭정일까. 헌법상 장관의 임면권은 대통령에 있고, 대통령은 그 권한을 행사했을 뿐이다. 물론 국회, 나아가 야당의 반대에도 설득이나 노선 수정 없이 임명하는 것에 비판을 할 수는 있으나 이 때문에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는 건 ‘오버’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단박에 “결사저항의 속뜻이 ‘김학의 사건’ 재수사 불똥이 본인에게 번지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아보겠다는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홍영표 원내대표)는 비판이 나왔다.

아마도 황 대표의 이 같은 언행은 내년 4ㆍ15 총선까지 염두에 둔 행보로 짐작된다. 선거의 구도를 ‘좌파독재’ 문재인 정부에 대항하는 약자 야당의 싸움으로 만들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그러니 야당에 힘을 실어달라는 신호를 지지층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프레임을 총선까지 끌고 가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남았다. 그 사이 임시국회들과 정기국회가 있다. 현 정부가 더 많은 실정을 하기를 기다리겠지만, 자칫 ‘발목 잡는 무책임한 야당’의 프레임을 뒤집어 쓸 우려도 있다.

정치인에게 ‘결사항전’은 마지막 카드다. 현실과 정치언어 사이에 온도 차가 너무 벌어지면 말의 권위도 함께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위험을 황 대표가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하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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