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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인공 지능과 직업

입력
2019.04.10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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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선망받는 직업 중 하나인 판사가 인공지능과 경쟁하게 된다면? 사건 하나하나가 인간이 이해하기에도 얼마나 복잡하고 미묘한데, 과연 인공지능이 잘 판결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런데, 미국 노스웨스턴대 윤혜진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사직의 자동화로 인한 대체 가능성은 무려 40%, 특히 행정법원 판사의 경우 64%에 달한다. 이것은 변호사 4%, 갈등중재자 6%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기자의 경우는 어떨까? 요즘 로봇저널리즘의 등장으로 기자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지만, 언론인의 대체 가능성은 11%, 방송 아나운서도 10% 정도라고 한다. 의외다.

윤혜진 교수에 따르면, 자동화로 인한 대체 위험은 직접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냐 아니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의사 결정이나 단순 육체노동이면 되는 직업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직접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대체 가능성이 적다. 기자의 경우, 취재원을 직접 만나고 주변에서 정황, 숨겨진 뒷얘기 등을 캐내야 하는 직업이니 대체가 쉽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직접 사람을 상대하더라도, 단순 질문만 반복하는 직업은 취약하다.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처럼 금방 자동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아주 쉬운 직업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이들은 여당인지 야당인지만 입력해주면 자동으로 메시지를 만들어낸다. 여당을 입력하면 무조건 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메시지를 출력할 뿐, 서민과 자영업자로부터 입력되는 정보는 후순위로 처리한다. 야당을 입력하면 아무리 정부 또는 여당이 훌륭한 성과를 내도 깎아 내리거나 자신들의 기여라고 출력한다. 야당의 맨얼굴은 여당의 그것과 마치 데칼코마니의 좌ㆍ우측처럼 닮아 있다.

인공지능의 특징이 또 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사인(私人)도 법인(法人)도 아니라서 책임질 수 있는 주체가 아닌 것이다. 무인자동차가 사람을 다치게 했을 때, 자동차 제조업체를 처벌할 것인지 운전석에 탄 탑승자를 처벌할 것인지는 고민할 수 있어도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동차를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누군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하는 일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논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앞서 말한 한국 정치인들 역시 이미 인공지능과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자신의 지역구나 재개발지역 투기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아무런 반성도 없고, 대신 다른 당이나 임명직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에는 엄정한 잣대를 들이댄다. 스스로의 책임과 자격은 도외시하면서 다른 이의 책임에는 무한 민감성을 보이는 행태는 인공지능보다 더 기계적이다.

앞서 언급한 윤혜진 교수 등의 연구에 의하면, 자동화로 인한 대체 위험이 거의 0%에 가까운 직업들이 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 정신건강상담자, 임상심리학자, 재활상담가 등이다. 인공지능이 상대의 표정을 읽고, 기존 상담 기록을 살펴보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감정을 보듬는 힘은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요’ 하는 공감과 ‘당신은 잘할 수 있을 거예요’라는 격려에서 나온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경험을 ‘에뮬레이트(흉내 내기)’할 수 있을 뿐 진심이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바른 정치인이라면, 진심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지역 물가 수준에 따라 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하는 최저임금이 우리나라에서는 시골 장터나 서울 강남의 백화점이나 모두 똑같다. 이런 불합리를 개선코자 하는 의지가 있는 정치인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감이 없는 정치인은 인공지능에 의해 쉽게 대체될 것이다.

김장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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