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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사법농단 재판, 법원의 업보다

입력
2019.04.0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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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6월 경기 성남 자택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6월 경기 성남 자택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요즘 무죄 주장하는 변호사가 없어.”

판사들이 가끔 하는 푸념이다. 법률가로서 전체 사건 틀을 두고 대담하게 논쟁하기보다 수사 재판 단계별로 세세한 법률적 테크닉을 제공하고 매 단계마다 돈 받아내는데(라고 쓰되 가끔은 ‘뜯어낸다’고도 읽는다) 더 집중한다는 힐난이 담겨 있다. 무죄 주장으로 세게 붙어줘야 판사도 한번 더 고민하게 되고 그래야 판결이 더 발전하게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세상 다시 없을 공명정대함으로 중무장해야만 할 것 같은 판결은, 실은 게임이다. 법리니 양심이니 하는 고상한 이야기가 들어설 자리는 의외로 적다. 무조건 입증해야 한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라 해도, 증거 못 모으고 논리 못 세우면 두 눈 멀쩡히 뜨고도 당한다. 이런 현실은, 저 하늘 위 높은 곳에서 모든 것을 굽어보시는 현명한 주재자가 저 나쁜 놈에게 마침내 날벼락을 내리꽂는, ‘도덕적 정의 실현 판타지’를 좋아하는 한국적 마인드와 잘 안 어울리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실체적 진실’ 같은, 거창하지만 따지고 보면 좀 이상한 말을 써가며 수사 재판 과정의 온갖 세세한 이야기들에 일희일비하지만, 사실 이런 풍경은 사회 문화적으로, 제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 혹은 ‘능력’이 없다는 자백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때려잡아야만 바로 서는 게 정의라면, 철마다 전임 대통령, 정치인, 고위 관료, 대기업 사장들을 잡아 넣고, 한 번은 이쪽을 ‘적출’하고 또 한 번은 저쪽을 ‘청산’하는 대한민국인데 정의가 아니라 정의의 할아버지라도 살아 돌아와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도 여전히 정의에 목마르다 아우성이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몇몇을 희생양 삼아 감정의 카니발을 만들어내는 건 아닌지 고민해볼 일이다.

최근 사법농단 수사와 재판에서 오랜 조서 열람시간, 압수수색 영장의 범위, 공소장일본주의 같은 것들이 화제가 됐다. 법원 내 일각에서 공감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솔직히 그런 반응에 많이 놀랐다. 아무리 인권이란, 진흙탕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 같은 것이라고들 하지만, 그렇다고 인권의 보루를 자임해온 분들이 스스로 진흙탕이 될 필요까지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구속되자 이제서야 갑자기 ‘무소불위 검찰’ 운운하며, 보수 기득권 ‘나으리’들에게만 유독 동병상련에 가까운 인권 감수성을 발휘하시는 분들 주장에 동의할 생각도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더 많은 무죄 변론 이전에 더 많은 무죄 판결이 있었어야 했다. 가령, 논쟁적인, 아니 ‘논쟁적인’이란 표현 자체도 2차 가해에 해당할 지 모르겠으나, 안희정 판결 또한 그렇다. 2심이 정의를 바로 세웠다고 기뻐하는 이들이 의도하는 바,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안다. 하지만 ‘감수성이라곤 없는, 기득권에 찌든 마초 남성 판사’라는 비난과 낙인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도 무죄 판결문을 써 내려간 1심 재판부의 고심 또한 천천히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거칠게 말해 공권력의 힘을 보여주는 검사가 잡아들이는 사람이라면, 공권력의 한계를 설정하는 판사는 풀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단, 보석이나 집행유예 같은 찜찜한 방식이 아니라 과감한 영장 기각, 무죄 판결로써 그리 해야 한다. 멀리 갈 것 없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 “검사 조서를 던져버리라”고 외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상고법원은, 어쩌면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올 훈장 같은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양승태, 임종헌 두 전직 고위법관에 대한 수사, 재판을 보고서 이제서야 뭔가 이상하다 싶다면, 그들이 오랫동안 찬조 출연해 온 ‘도덕적 정의 실현 판타지’ 세계의 용어를 되돌려 줄 수 밖에 없다. 그건 검찰보다 더 검찰스러웠던 법원의 오랜 업보다.

조태성 사회부 차장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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