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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체스판 위의 쌀알

입력
2019.04.07 18:00
수정
2019.04.07 19:4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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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 발전의 폭발적인 속도를 얘기할 때 종종 ‘체스판 위의 쌀알’이라는 우화가 인용된다. 체스는 6세기 인도 굽타 왕조에서 시작됐다. 당시 황제는 체스 발명가에게 어떤 보상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발명가는 체스판의 64개 칸을 기준으로 차례로 쌀알을 1,2,4,8,16 등 두 배씩 늘려달라고 했다. 황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체스판의 절반까지만 해도 쌀알 40억 개로 논 몇 마지기 분량이었다. 하지만 등비수열 공식을 적용해보면 최종적으로 엄청난 숫자가 나온다. 2의 64승 -1로 1,800경 개에 해당한다. 에베레스트 산을 쌓고도 남는 규모다. 화가 난 황제는 발명가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 디지털 세계에는 멧카프 법칙(Metcalf’s Law)이 있다. 하나의 네트워크가 발생시킬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가치는 참여자 수의 제곱에 비례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참여자가 많은 페이스북과 같은 네트워크가 거대한 기업 가치를 향유한다. 20억명의 사람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은 페이스북은 특정 국가는 물론 기독교를 제외한 어떤 종교도 하지 못한 규모다. (‘당신의 행복은 해킹 당했다’, 비벡 와드와)

□ 문제는 디지털 기술 시대의 기묘한 역설이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경제는 급속도로 성장했고, 일자리는 없어진 것보다 새로운 것이 많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 발전이 본격화하기 전후부터 그렇지 못하다. 성장률도 지지부진하지만 소득 상승률도 지체 상태다. 다니엘 코엔의 책 ‘출구없는 사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지난 30년간 인구 90%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아예 상승하지 않았다. 유럽의 1인당 국민소득 상승률은 1970년대 3%, 1980년대 1.5%, 2001년부터 2013년 사이에는 0.5%로 하락했다.

□ 1980년대에 ‘파바로티 효과’라는 현상에 대한 분석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같은 최고 아티스트의 앨범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위 1%에 부와 명예가 집중되는 ‘스타 시스템’에 관한 비판이다. 지금 디지털 기술시대도 그런 현상이 지배적이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채용 인원을 다 합쳐도 자동차 기업 하나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마크 저커버그 등 극히 소수의 기업가들이 디지털 플랫폼을 장악하면서 초고소득을 올리는 ‘승자 독식’ 시스템이 굳어지고 있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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