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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양비론에 기생하는 정치

입력
2019.04.04 19: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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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달 29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사거리를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이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여영국 단일후보, 황 대표는 같은 당 강기윤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창원=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왼쪽)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달 29일 오후 경남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사거리를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이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여영국 단일후보, 황 대표는 같은 당 강기윤 후보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 창원=연합뉴스

여권에 대한 민심의 경고가 4·3보궐선거로 확인됐다. ‘3·8 개각’으로 발탁된 장관후보자 7명 가운데 2명이 낙마한 엄중한 정국의 한복판에서 유권자들에겐 적어도 3명의 인물이 떠올랐을 법하다. 우선 흑석동 고가건물 투기 논란으로 옷을 벗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경남 창원성산에서 민주·정의당 단일후보 지원활동을 한 지인은 “부인 탓하는 모습에 남자로서 모멸감을 느꼈다”는 반응을 적지 않게 접했다고 한다. 아내가 한 일이어서 몰랐다는 변명에 지지층의 얼굴이 뜨거워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26억원짜리 건물을 사는데 몰랐다는 얘기가 통할까.

“내 집 마련에 대한 남편의 무능과 게으름, 집 살 기회에 매번 반복되는 결정장애에 아내가 질려있었다”고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정작 부인이 10억원을 대출받은 은행 지점장은 자신의 고교 후배였다. 지난 연말 김태우 특감반원 폭로에 “문재인 정부엔 민간인사찰 DNA가 없다”는 오만한 브리핑을 할 때부터 불안불안해 보였다. 최순실게이트 특종기자 출신이 결국 문재인 대통령에게 해를 입힌 셈이다.

자진사퇴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후보자 역시 여전히 만만찮은 화제를 낳고 있는 인물이다. 부동산과 전쟁을 불사한 현 정부의 주무장관 후보자로서 강남, 분당, 세종에 ‘알짜배기 3채’를 보유했으니 ‘투자의 달인’으로 회자될 만하다. 그를 통해 최소한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사회 잘나가는 엘리트관료의 실상, 그리고 여론을 추호도 걱정하지 않고 이런 인물을 밀어붙인 청와대의 오기다. 지지율만 믿는 건지, 청와대 인사 검증라인의 ‘배포’에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일각에선 국회의원 40%가 다주택자라며 내로남불로 시비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의회는 빈자부터 중산층, 자산가에 이르기까지 국민 여러 계층의 대표성을 띈 곳이다. 선거를 돌파해 표로 선택된 그룹이다. 이와 달리 청와대 공직자나 내각은 특정 정권의 정체성과 시대정신이 반영된 집단이어야 한다. 청와대 인사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최근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이 이어받는 분위기다. “집 3채가 흠이냐” “3,500만원밖에 안되는 포르쉐가 문제냐”고 쏟아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청문회를 지켜봤다면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의 모습에 공감하기도 힘들다. 윤한홍 의원을 비롯한 한국당 측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게 유방암 수술을 받은 일시와 병원자료를 요구해 성차별 논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후보자 망신주기로 난장판을 만든 장면이 수두룩했다. 무엇보다 4·3보선 기간 한국당이 쏟아낸 막말들을 보라. 오세훈 전 서울시장만 해도 창원에서 “돈받고 스스로 목숨끊은 분 정신을 이어받냐”고 고(故) 노회찬 의원을 조롱했다. ‘5·18 망언’이나 반민특위를 국민분열이라 떠드는 풍경이 전혀 낯설지 않은 진영이 바로 이들이란 사실을 다시 인식시켜 준다.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독설경쟁에 웬만한 충격은 무뎌질 정도다. 지금 야당 측은 버닝썬 수사를 부각시키고, 여당은 김학의 전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들추기에 집착하고 있다.

이쯤 되니 정상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어느 한쪽을 편들긴 힘들어진다. 여야 모두가 최악이라는 양비론 외엔 결말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독선과 아집에 빠져 촛불정부의 허구성만 드러내는 최근의 여권 인사들이 떠오르면 한국당 유력세력인 태극기부대가 생각나 말문이 막힌다. 어쩌면 양측은 속으로 양비론을 만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의 취약점을 함께 약화시켜 적대적 공생구조를 가능케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종북좌파’와 ‘토착왜구’가 충돌할수록 국민의 정치 무관심은 커지고 기존 기득권이 유지되는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셈이다. 거대양당은 유권자 권리가 달린 선거제 개혁을 놓고도 공수처법안이니 뭐니 핑계를 대며 슬그머니 뭉개기로 카르텔을 형성한 느낌이다.

박석원 정치부 차장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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