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해외 석학 칼럼] 핵 위기로 돌아가는가

입력
2019.04.08 04:40
29면
0 0

10년 전, 첫 유럽 순방에 나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역사적인 연설을 한다. 핵무기 없는 세상이 바람직하고 실현 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미 대통령으로서 첫 발언이며, 그 해 말 노벨평화상 수상의 계기가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북대서양 조약 제5조에 따른 집단방위 원칙에 대한 약속은 영구적이며 무조건적인 것으로, 체코인과 대부분의 유럽인에게 미국이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이제 오바마의 그 말은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오바마 후임 트럼프 대통령은 약 70년 간의 외교 전통을 버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주요 역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1987년 이래 유럽안보의 기초가 되었던 러시아와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는 시간이 가면서 핵군축의 우선순위가 낮아지는 정도였지만, 트럼프는 그 목표를 완전히 뒤집어버리고 재무장을 추진키로 한 듯하다.

현대 다극화 사회에서는 냉전시대 유물인 INF 조약 같은 양자협정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 조약에 따라 미국과 러시아는 500~5,500㎞ 범위의 지상 미사일을 보유하지 못하지만, 중국은 미사일의 95%가 그런 무기로 돼있다.

더욱이 미국과 러시아는 서로 INF 조약을 위반했다며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는 조약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를 복귀시키는 게 더 합리적이었을 게다. 그렇게 유리한 위치를 확보해 중국과 중국 무기에 동일한 규범적 틀을 확대 적용하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대신, ‘협상의 기술’의 저자인 트럼프는 그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협상을 성취시키지 못한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조언을 따랐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기인 2002년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 조약에서 미국을 탈퇴시켰고,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INF 및 이란과의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다음 목표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마바와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2010년 프라하에서 서명한 핵군축 협약이 연장되지 않으면 2021년 만료될 예정이다.

계속되는 국제무기통제 체제의 붕괴로 새로운 핵무기 개발 경쟁이 시작됐다. 어두운 냉전시대로 돌아가는 듯, 강대국 지도자들이 핵의 잠재적 사용을 경솔하게 말하고 있다.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북한 같은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국이 핵을 보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취임 첫 해, 그와 김정은의 선동적인 발언은 수십 년 동안 겪지 못했던 북미 관계의 긴장을 최고조에 달하게 했다. 이후 ‘화염과 분노’의 위협 대신 외교로 노선을 바꿨지만, 북한에 대한 트럼프의 접근 방식은 모든 효과적인 외교원리를 무시하고 또 다른 경솔함을 드러낸 행위였다. 한마디로 공허한 찬양의 광경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 외교정책 입안자들 사이의 공감대가 없는 와중에 트럼프의 즉흥적인 행동까지 합세하면서 최근 김정은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 다른 지역의 강대국을 포함시키고 볼턴과 행정부의 다른 강경파들이 북미 협상을 다시 무산시키지 않도록 재편성이 시급하다.

또 다른 NPT 비조인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지난달 인도 잠무 및 카슈미르에서 테러공격과 무력충돌을 겪었다. 클린턴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라고 한 카슈미르는 인도, 파키스탄, 중국 등 세 핵 보유국이 공유하고 있다. 파키스탄이 1990년대 후반 핵 능력을 공개한 이후 인도-파키스탄 간 긴장은 최고조에 달했다. 최근의 불안감이 보여주듯 핵무기의 존재는 분쟁의 예방보다 분쟁의 위험을 더 높여 다툼을 실제 충돌로 확대시킨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에서도 핵확산의 우려를 더할만한 일을 했다. JCPOA 탈퇴 결정은 매우 비생산적이며 NPT 비조인국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그의 맹목적 지지를 확인했을 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안전조치도 없이 사우디 정권에 핵 물질을 수출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사우디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은 핵무기 개발을 배제하지도 국제원자력기구의 조사에 응하지도 않았으나, 트럼프는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듯 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짝만 잘못 짚어도, 이미 위험한 중동을 핵무장 경쟁으로 몰아 넣는 최악의 사태가 될 수 있다.

트럼프는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에 한국과 일본이 자위 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고 자주 언급했는데, 이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없다. 더 많은 국가가 핵무기를 가지면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논리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냉전은 우리가 지정학적 이익을 추구할 때 가장 중요한 국제안보를 간과하는 위험을 보여준다. 오바마가 프라하에서 강조했듯,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했던 유일한 나라로 다시는 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하는 역사적인 책임이 있다. 미국이 이 책임을 버리고 새로운 핵확산 시대를 주도한다면 지구촌에 엄청난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Project Syndicat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