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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죄수의 딜레마’에 갇힌 우리 정치

입력
2019.03.28 18:00
수정
2019.03.28 18: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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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반이민 무슬림 테러에 전 세계 경악

포용과 공감으로 치유한 30대 女총리에 열광

적대 이기는 공존… ‘내시균형 정치’ 모색해야

'히잡'을 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총격 테러 참사 일주일을 맞아 지난 22일(현지시간) 크라이스트처치의 알 누르 모스크 맞은 편 헤글리 공원에서 거행된 이슬람식 희생자 추모예배에 참석해 슬픔을 나누고 있다. 아던 총리는 이날도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혐오와 차별은 뉴질랜드의 정신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크라이스트처지=로이터 연합뉴스
'히잡'을 쓴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총격 테러 참사 일주일을 맞아 지난 22일(현지시간) 크라이스트처치의 알 누르 모스크 맞은 편 헤글리 공원에서 거행된 이슬람식 희생자 추모예배에 참석해 슬픔을 나누고 있다. 아던 총리는 이날도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강조하며 혐오와 차별은 뉴질랜드의 정신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크라이스트처지=로이터 연합뉴스

세계가 연일 그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엔 “바람직한 지도자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열광이 넘치고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서명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엔 높이 828m의 지구촌 최고층 건물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 외벽에 그의 사진이 투영되기도 했다. 영어와 아랍어로 병기된 ‘평화’라는 글자와 함께.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사상 최악의 인종 혐오 총격테러에 남달리 대처해 공감과 포용의 가치를 세계에 알린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 이야기다. 변화와 젊음을 무기로 청년층과 여성, 진보진영에 두터운 ‘마니아’층을 갖긴 했어도, 그가 2017년 8월 얼떨결에 노동당 대표를 맡아 총선을 지휘하고 두 달 만에 벼락처럼 37세의 세계 최연소 여성 총리가 된 것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집권 후 셀럽(celeb)의 유명세를 치르며 지난해 갓 출산한 딸과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등 많은 화제를 낳았지만 경제신뢰지수가 최악으로 떨어져 실속이 없다는 비판도 많았다.

사망 50명 등 100명의 사상자를 낸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모스크) 테러는 혐오와 차별이 부른 인류적 재앙이었으나 그런 비극을 건너는 지도자의 지혜와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 계기였다. 그는 사건 당일 보고를 받자마자 현장을 봉쇄하고 주민들에게 외출 자제를 당부했다. 가장 신경 쓴 것은 범인이 SNS에 올린 17분간의 테러 동영상을 삭제하고 전파를 막는 일이었다. 이민자를 ‘침략자’로 지칭하며 무슬림 혐오와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려는 범인의 의도를 차단하는 게 가장 시급해서다. “희생된 무슬림 이민자들은 뉴질랜드를 집으로 선택했다. 그들은 바로 우리”라고 선언한 이유다.

결정적 장면은 테러 다음 날 검은 상복에 검은 히잡을 쓴 그가 여야 지도자들을 이끌고 유족을 찾아 포옹과 눈물로 위로하는 모습이었다. 사진을 통한 그의 진심은 서방은 물론 15억 이슬람권까지 널리 전파됐고 “포용과 공존, 연대가 뭔지를 보여줬다”는 칭송을 자아냈다. 범인이 ‘백인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든 상징’이라고 받든 트럼프 대통령이 돕겠다고 하자 “먼저 모든 무슬림 공동체에 공감과 사랑을 보여달라”고 응대한 것도 화제가 됐다. 특히 “테러범은 악명을 얻기 원하겠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을 것이다. 대신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자”는 그의 의회 연설은 세기적 울림을 낳았다.

그가 사건 발생 24시간도 안 돼 자동 및 반자동 총기 규제 및 단속 대책을 발표하고 시민들이 총기 반납으로 호응한 것은 더 주목할 사례다. 총기사건이 날 때 대응은 두 가지다. 모두가 각자도생을 위해 총기를 구입하는 것이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총기 소유를 줄여 사고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는 것이다. 전자가 이기적 행동으로 모두 손해를 보는 미국식 ‘죄수의 딜레마’ 모델이라면 후자는 상호 협력으로 모두 이익을 얻는 뉴질랜드식 ‘내시균형’ 모델이라고 불릴 만하다. 결과적으로 뉴질랜드 테러는 트럼프와 대비되는 아던 리더십을 중심으로 불러냈다.

지구적 비극이 일어난 먼 나라 지도자의 얘기로 글의 대부분을 채운 뜻은 단 하나다. 정치는 혐오와 차별을 조장하고 상처를 헤집는 것이 아니라 갈등의 치유와 해소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고, 뉴질랜드의 30대 총리가 그 전형을 보여줬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금세기 들어 보수와 진보진영이 번갈아 집권하는 과정에서 청산과 적대의 쌍심지만 켜 온 우리 정치가 배울 점은 없는지 생각해보자는 의도에서다.

공존ㆍ공감ㆍ통합 등 ‘함께’를 유달리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에서 어느 때보다 정치인들의 말이 살기를 품고 쌍스러워진 것은 아이러니다. 집권세력이 화려한 레토릭과 달리 ‘우리 편만 함께’식으로 배제의 정치를 고집하고, 늙고 낡은 보수세력은 죽기 살기식 저항에서 존재감을 찾는 탓이다. 우리 정치가 적대와 혐오를 먹고사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질 것인지, 치유와 공감에 기반한 내시균형을 찾을 것인지, 아던 리더십은 묻고 있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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