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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좋은 정부, 나쁜 정부

입력
2019.03.13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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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절차, 삼권분립 경시 태도

前정부 정책 섣불리 자주 뒤집어

갈대 같은 민심 향배 잘 살펴야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집권 시절 자신이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것을 자청했다. 언론이 만평이나 가십으로 자신을 비판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들어도 된다는 얘기였다. 국제무대에서는 헬무트 콜 독일 총리의 행태가 언론에서 수시로 희화화할 때였다. 하지만 여전히 정권의 서슬이 퍼랬던 때라 언론이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비판하거나 웃음거리로 만들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실제 노 전 대통령 집권 기간이던 1988년 12월 31일에 국가모독죄가 폐지됐다. 국가 원수를 모독하는 발언 및 출판행위에 대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형을 적용했던 법이다. 이후 그는 ‘물태우’가 됐다. 그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민주화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들은 집권 말기에 너무 심하게 희화화되는 것이 문제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쥐박이’,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귀태(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미 ‘김정은 수석 대변인’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집권 말기로 향할수록 대통령들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5년 단임제의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거나, 민생이 위태로워지면 비난의 화살이 대통령으로 향한다.

이번 정부의 가장 큰 실책은 민주주의 절차와 삼권분립 원칙을 경시하는 태도다. 민주주의 위기는 절차적 하자에서 오는 법이다. 그래서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있다. 민주주의가 규정하는 개념을 절차적 부분에서 제대로 소화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보는 개념이다. 여기서 절차는 토론과 관용, 다수결 원리, 비판과 타협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이나 탈원전, 4대강 보 해체 등의 정책에서 이 같은 절차는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백했듯 무지개를 잡으려는 허망한 몸짓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절차를 경시하고 정책을 뒤집는 일도 다반사다. 환경부 산하 4대강 조사ㆍ평가기획위원회의 보 해체 결정 과정도 석연치 않다. 지역 주민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고, 탈원전 정책은 미세먼지와 뒤엉켰다. 법원 판결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적 태도도 도를 넘어섰다.

절차와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가 누적되면 사회적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주말마다 광화문 거리는 분노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도 없다. 화해와 치유, 소통과 협치라는 탄핵의 교훈은 온데간데 없고 분열과 혼란만 증폭되고 있다. 여기에 경제와 일자리 성적은 바닥을 기고 있다. 수출은 급락하고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항룡유회(亢龍有悔)라고 했던가. 하늘 끝까지 올라간 용이 후회한다는 것으로, 무작정 밀고 나갔지만 결국에는 실패했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100년 집권’ 운운한다. 실적과 능력에 비해 욕심이 과하다. 박정희 군사독재도 18년 만에 무너졌다. 북한의 ‘백두 혈통’과 같은 세습 권력도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는 ‘국민 정서법’이 강하다. 국민 정서는 민심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법 위에 민심이 있다. 민심이 나빠지면 정권 존립이 위협을 받는다. 촛불이나 탄핵이나 민심이 동인이었다. 하지만 민심은 변덕이 심하다. 정권을 향해 찬사를 보내다가도 갑자기 등을 돌린다. 민심은 종종 마녀로 둔갑해 몹쓸 사냥을 하기도 한다.

“좋은 정부란 국가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고, 구성원의 자유와 권리, 행복을 증진하는 정부다. 반면 나쁜 정부란 나라를 전쟁 상태로 몰아넣거나, 사회적 퇴보를 조장하고, 구성원들을 속박과 가난, 갈등에 시달리게 만드는 정부를 말한다.” (‘좋은 정부, 나쁜 정부’, 박희봉)

‘임금의 하늘은 백성, 백성의 하늘은 밥’이라 했다.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면 민심도 갈대처럼 흔들린다. 좋은 정부가 되려면 민심을 제대로 챙겨야 한다. 민심을 이반하면 어떻게 되는지 박근혜 정권이 잘 보여 줬다. 검찰의 칼날은 정권 전반기에는 외부로 향하지만 후반기에는 내부로 향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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