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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협동조합 출범 “외톨이 페미들 다 모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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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협동조합 출범 “외톨이 페미들 다 모이세요”

입력
2019.03.13 04:40
수정
2019.03.14 11:34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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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잉’ 김한려일 이사장

페미니즘 특강, 독서모임을 기반으로 한 두잉은 최근 몇 년 사이 세분화된 국내 페미니즘 진영의 통로 같은 역할을 한다. 김한려일 두잉 이사장은 “나이나 성별, 취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페미니즘 특강, 독서모임을 기반으로 한 두잉은 최근 몇 년 사이 세분화된 국내 페미니즘 진영의 통로 같은 역할을 한다. 김한려일 두잉 이사장은 “나이나 성별, 취향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카페 ‘두잉’은 1997년 이화여대 동문이 만든 페미니즘 카페 ‘고마’이후 20년만에 생긴 페미니즘 카페란 점에서 재작년 2월 문을 열 때부터 관심을 받았다. 페미니즘 도서관과 갤러리, 여성주의 상담소를 합친 그곳의 정식 명칭은 ‘페미니즘 멀티카페 두잉’. 개점 당시 600권 남짓했던 장서는 2년만에 1,300권으로 늘었고, 매월 개최하는 특강과 정기 독서모임이 입소문을 타며 ‘영페미니스트의 성지’가 됐다. 그리고 세계 여성의 날 111주년인 8일 서울시 사회적 협동조합 인가를 받아 ‘페미니스트 협동조합’이 됐다. 카페 대표에서 협동조합 이사장이 된 김한려일(52)씨는 “고립돼 살아온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해 이곳을 만들었다. 페미니즘 운동을 함께 할 사람들을 기다렸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김한 이사장 스스로가 ‘고립된 페미니스트’였다. 학업과 육아, 가사노동과 직장 일을 병행해야 했던 결혼은 “뼛속 깊이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제도였고, 김한 이사장은 30대에 싱글맘이 돼 두 자녀를 키웠다. C3TV기독교방송(현 굿티비)에서 인터넷방송 팀장으로 시작해 방송국장으로 일하며 이화여대 신학대학원에서 여성주의 목회상담을 전공했다. 결혼정보회사, 쌈지길 의류디자인숍, 보험회사에서도 일했고, 위스키 바를 운영한 적도 있다. “항상 절벽에 서 있었거든요. 제가 손 놓으면 애들 죽으니까 너무 무서웠어요. 제가 이렇게 보이지만 성격 진단해보면 내향형 100%예요.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받는 사람인데, 보험회사 다닐 때 300명 앞에서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말 외치면서 영업 실적 전국 7등을 했어요.” 보험 컨설턴트는 10개월만에 쓰러지며 그만뒀다.

김한 이사장은 “지금까지 일에서 실패한 적이 없었다”고 자신하지만, 그 중 돈을 모을 수 있었던 일은 보험회사 영업과 바 운영 딱 두 가지, 요컨대 ‘가면의 생’을 사는 일뿐이었다. 그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을 연기하지 않고는, 그 여성을 팔지 않고는 먹고 살기 힘들다는 걸 절감했고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회 구조가 어떻다는 걸 그때 절실하게 깨달았죠.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면서 알게 됐는데, 아들 둘 있는 싱글맘은 회원으로 가입 받지도 않아요. 그런 현실을 알았으니 더 할 말이 많은데,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기는 힘들어요. ‘아무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혼자다’ 생각하고 살았죠.”

페미니즘 멀티 카페 두잉 전경
페미니즘 멀티 카페 두잉 전경

20년 전부터 꿈꾼 페미니즘 카페를 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세월호 참사와 강남역 살인사건을 겪으면서다. 세월호 참사 후 1년간 매일 저녁 강남역에서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을 받으면서 “더 이상 연기를 하면서 살 수 없다”고 느꼈고,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이제는 나를 그대로 표현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에 신용보증재단 창업 대출을 받아 두잉을 차렸다. “문 열자마자 사람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줄 알았다”고 너털웃음을 보인 그는 “사람들, 단체들이 모여 연합하고 활동하고 이 공간의 주인이 되길 바랐다”고 말했다.

‘페미니스트의 네트워크’란 컨셉트에 걸맞게 관련 도서를 구비했고 카페 한 편에 상담 공간을 만들어 직접 여성주의 상담을 진행했다. 젠더, 인권 관련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도 운영했다. 인터넷방송 기획자 경력을 십분 살려 두잉 홈페이지와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관리, 특강과 북토크 등 행사 기획과 강사 초빙을 도맡았다. “2년간 월급 책정 않고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버텼어요. 두잉은 수익 내는 곳이 아니고, 페미니즘 운동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개점한 2017년 이후 페미니즘 운동이 세분화되면서 여러 단체가 생겼는데 두잉은 어느 한 가지 담론을 담아내진 않아요. 이곳은 열린 공간이어야 하거든요. 통로를 만들어주면서 제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죠.”

“두잉이 지속가능하려면 여럿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난해부터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했고, 연말 출자자 8명이 모였다.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자금 1억원 중 6,000만원은 후원자와 조합원을 모집해 충당할 계획이다. 페미니즘 특강과 연속강좌, 소규모 그룹강좌, 독서모임 등 ‘페미니즘 학당’을 운영할 계획이다. 조합원은 강의를 개설해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고, 두잉 운영비도 적립할 수 있다. 조합원 중 신생 페미니즘 단체, 활동가를 발굴해 지원하는 사업도 펼칠 계획이다. 크라우드펀딩 텀블벅(https://tumblbug.com/cooperative_doing)을 통해 다음달 6일까지 1차로 설립자금 후원금을 모금한다. 김한 이사장은 “두잉은 ‘두잉 페미니즘(Doing Feminism), 페미니즘 하다’의 약자다. 페미니즘은 늘 살아내는 것이고, 행동하는 것이고,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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