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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 칼럼] 황교안의 길

입력
2019.03.10 18:00
수정
2019.03.10 18:5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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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 되려면 바른 역사인식 가져야

황교안의 미래, 박근혜 극복 여부에 달려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슴엔 무엇이 있을까.

회한일까, 분노일까, 그것도 아니면 무념무상일까. 변호사 외엔 누구의 면회도 거부하는 상황이기에 그의 흉중을 알 길이 없다.

참으로 안타깝다. 권력의 정점에서 쫓겨나 차가운 독방에 있는 게 안쓰러운 게 아니다. 정치 입문 후 보수의 궤멸 위기 때마다 천막 당사로, “대전은요?”라는 말 한마디로 판세를 뒤집었던 스타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극적인 비극이 서글픈 게 아니다. 진정 안타까운 것은 그가 위대한 지도자는 아니더라도 좀 더 나은 대통령, 좀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박근혜 의원과 식사하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오래 전이라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흐릿하지만, 지금까지도 돌에 새겨진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가 아버지 박정희를 극복하겠다고 다짐한 대목이다. 질문에 대한 답이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근대화를 이끈 공은 크지만,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특히 인사나 정책에서의 지역차별로 깊어진 지역감정은 두고두고 이 나라를 괴롭히고 있다는 지적을 했다. 예민한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는 “아버지를 극복하겠다”면서 지역주의에 대해선 “TK에 빚이 없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비록 사석이었지만, 그 단호함과 결기는 우둔한 한 사람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드디어 2012년 대선 국면. 그는 경제민주화, 국민통합, 복지 확대라는 진보세력의 어젠다를 들고 나와 문재인 후보를 압도했다. 중도적인 많은 이들이 혁신적인 공약에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구호와 진실은 다르다는 사실이 드러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맨 먼저 5ㆍ16 군사쿠데타에 대한 평가를 요구하는 언론의 질문에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근대화라는 업적이 존재한다고 해서 헌정질서를 깨뜨린 쿠데타를 쿠데타로 인정하지 않고 ‘최선의 선택’이라니!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어느 날 방송인터뷰에서 인혁당 사건에 대해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1974년 박정희 정권은 유신 반대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대거 구속, 혹독한 고문으로 죄인들을 만들었고 이듬해 대법원이 8명에 대해 사형을 언도한 지 불과 18시간 만에 이를 집행해 전세계를 경악시킨 사건, 국제법학자협회가 ‘암흑의 날’로 비판한 사건을 역사에 맡기자니.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에 많은 이들이 경악했다.

그러나 그는 지성사회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대선에서 이겼고, 취임 이후 더 과감한 행보로 약속들을 지워나갔다. 경제민주화, 사회복지 확대는 성장의 논리, 재정의 현실 앞에서 휴지조작처럼 허공에 흩날렸고, 국민통합과 탕평은 과감한 차별적 인사로 없던 일이 됐다. 그리고 4년 후 탄핵 당했다.

과거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보수의 미래가 걱정돼서다. 촛불의 힘으로 집권한 진보세력이 뜻만 앞서지 실력을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보수를 대표한다는 자유한국당이 아예 내놓고 퇴행으로 치달으면 이 나라는 어찌될까. 보수는 성장과 자유, 시장이라는 담론을 내놓아야 하는데, “5ㆍ18 민주화운동은 북한군의 소행”이라는 해괴한 파시즘적 논리를 뿌리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당 대표가 된 박근혜 정부의 황교안 전 총리는 파시스트나 다름없는 언동을 일삼는 해당 행위자의 처리 앞에서 주저하고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제대로 된 보수 정치인들 중 동족을 공권력으로 살해한 군부정권이나 나치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한 적이 있는가.

다른 것을 다 차치하더라도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져야 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거기서 모든 게 출발한다. 박근혜 시대에서 총리를 했고, 태극기 지지세가 무시할 수 없다고 해서 역사인식마저 왜곡해서는 안된다. 박근혜의 비극은 아버지 박정희를 극복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면, 황교안의 미래는 박근혜의 극복 여부에 달렸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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