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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병처럼 옮는 거 아냐" 시선이 더 따가운 화상환자

입력
2019.02.26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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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마이너리티] <23>중증 화상 환자

수술 받고 기적처럼 살아나도 은둔 생활… 사고 전과 후 완전히 다른 삶

※ 대부분의 사람은 적어도 한 두 가지 측면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자신의 불편은 크게 느끼면서도 다른 사람의 소수자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냉소적인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 한국 사회에서 유독 힘들게 살아가는 소수자들의 모습을 들여다 봅니다.

중증 화상을 입었지만 그들은 삶에 대한 희망이 간절했다. 왼쪽부터 김은채, 최준서, 정인숙씨.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제공
중증 화상을 입었지만 그들은 삶에 대한 희망이 간절했다. 왼쪽부터 김은채, 최준서, 정인숙씨. 한림대한강성심병원 제공

# 전신 화상 환자 정인숙(49)씨는 화상을 입은 ‘그날’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을 멈출 수 없다. 사고가 난 날은 2007년 7월 20일. 당시 정씨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서 배달음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섯 평 남짓한 작은 식당이었지만 정씨의 네 가족은 행복했다. 고깃집, 부침개집을 하면서 날린 돈을 만회할 만큼 장사가 잘 됐기 때문이다.

불이 난 것은 정오 무렵이었다. 정씨가 주문받은 음식을 만들기 위해 가스레인지에 불을 댕긴 순간 불이 천장에 붙었다. 순식간에 사방으로 번진 불은 정씨와 아들을 덮쳤다. 전신 86% 화상을 입은 정씨는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5세였던 아들은 끝내 살릴 수 없었다. 반복되는 수술과 재활치료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정씨는 남편과 헤어지고 지금은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정씨는 “화상을 입은 후 8년간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은둔하며 살았다”며 “화상으로 내 인생은 망가졌다”고 탄식했다.

# “화상을 입지 않았으면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린이집을 차려 원장님 소리 들으며 살았을지 모르죠.”

김은채(48)씨는 자신의 인생이 180도 뒤바뀐 2004년 5월 13일을 떠올리며 씁쓸해 했다. 당시 광주에서 사회복지대학원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학교 근처 원룸에서 살았다. 저녁을 차려 먹기 위해 불 앞에서 요리를 했는데 창을 열어 놓은 게 화근이 됐다.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바람에 불이 번졌고 불길은 김씨의 얼굴 목, 상반신을 순식간에 할퀴고 지나갔다. 사고 후 병원에서 18개월 동안 치료를 받고 퇴원했지만 김씨의 삶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못볼 것을 봤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다. 김씨는 “병원에서 퇴원하고 1년 정도 지났을 무렵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며 “중증환자가 살기에 한국사회는 너무 잔인하다”고 토로했다.

◇평생 수술ㆍ재활 매달려 살아야 하는 고통

화상이 무서운 것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화상 환자들은 “순식간에 불이 번져 내 몸을 덮쳤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며, 사고를 예상치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런 예상치 못한 화재는 중증 화상 환자들의 삶을 극단적으로 바꾼다. 사고 후에는 다니던 직장도, 친구도, 심지어 가족도 모두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중증 화상 환자들은 “화상을 입은 후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며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퇴원 후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화상 환자는 한 해 50만명이 넘는다. 2013년 약 50만6,211명에서 꾸준히 늘어 2016년에는 52만5,430명이 화상 치료를 받았다. 정확한 데이터가 없지만 화상전문의들은 전체 화상 환자 중 중증 화상 환자가 5% 정도라고 추정하고 있다. 2만~3만명 정도가 중증 화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체표면적의 20% 이상 화상을 당하면 중증 화상 환자로 분류된다. 화상 정도는 화상 부위에 따라 진단하는데 머리ㆍ얼굴ㆍ목, 양팔은 각각 9%, 몸통 앞뒤는 각각 18%, 양다리는 각각 18%, 생식기 부위는 1%로 분류된다.

조용석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화상외과 교수는 “중증 화상 환자 대부분은 중환자실 치료만 한 달 가까이 받고 그 뒤 재활과 통원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라며 “이 환자들은 피부이식술만 해도 10회 이상 넘게 해야 해 마라톤과 같은 싸움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국내 화상 질환 진료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국내 화상 질환 진료 현황 그래픽=신동준 기자

◇“어쩌다 저렇게 됐나” 차가운 시선에 절망

중증 화상 환자들은 신체적으로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지만 이들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건 바로 ‘시선’이다. 잘 알고 지내던 주변인들마저 “어쩌다 저렇게 됐나”라고 말할 때는 모멸감조차 느낀다고 이들은 말한다.

중증 화상 환자들은 자신들을 마치 투명인간처럼 취급받는 일을 늘상 겪는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에서 만난 중증 화상 환자 박모(45)씨는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혀를 차는 걸 보는 일은 다반사”라며 “계단을 올라가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화상 입은 환자를 봤는데 대박이다’라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까지 봤다”며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 박씨는 “사람들은 우리를 함부로 차도 괜찮은 돌멩이처럼 여기는 것 같다”며 “화상을 당하고 난 뒤 마치 ‘하자 있는’ 사람처럼 낙인찍힌 것이 억울하고 분하다”고 말했다.

심지어 중증 화상 환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화상을 옮기는 ‘감염병 환자’처럼 오해 받기도 한다. 정인숙씨는 “식당에서 딸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화상을 입은 내 손을 본 한 중년 남성이 ‘저거 피부병처럼 옮는 거 아냐’라는 말을 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며 “화상을 당한 것만으로도 힘든데 전염된다는 오해까지 받으니 너무 억울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대학 시절 전기 누전으로 왼쪽 팔에 화상을 입은 중증 화상 환자 김모(38)씨는 “여러 차례 피부이식술을 받으면서 상태가 호전돼 대학도 졸업하고 다행히 직장생활도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화상을 입은 팔을 본 직장 동료들이 세균감염이 될까 겁이 난다며 다 함께 쓰는 컵도 쓰지 못하게 했고, 설거지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용기를 내 사회의 문을 두드려도 ‘화마’의 흔적은 중증 화상 환자들이 일어설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정씨는 화상을 입은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정했다. 2년 전부터 학원에 다녔지만 아직도 사회복지사가 되지 못했다. 실습을 허가해 준 사회복지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씨는 “실습 허가를 받기 위해 사회복지시설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들이 ‘당신을 보면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할 것’이라며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중증 화상은 사회적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셈이다. 김은채씨는 “화상 환자들은 보이는 용모 때문에 아무리 학력이 높아도 취직이 되지 않는다”며 “평생 기초생활수급자로 수술비나 지원받으면서 남들에게 천대받고 살아야 할 것 같다”고 울먹였다.

중증 화상 환자들이 가장 바라는 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다. 김씨는 “우리는 몸과 마음의 상처로 먼저 손을 내밀 수 없지만 먼저 다가와서 우릴 이해해 주고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들도 있다”며 “내가 먼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배려 깊은 사람들과 살고 싶다는 게 작은 희망”이라고 말했다.

조용석 교수는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약을 바른 뒤 거즈나 붕대로 감싸는 드레싱을 할 때마다 통증이 너무 심해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중증 화상 환자들”이라며 “화상은 누구나 당할 수 있기에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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