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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진 칼럼] 부정과 불복의 정치

입력
2019.02.21 18:00
수정
2019.02.21 18: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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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와 결정, 사실 뒤집겠다는 정치인들

수긍ㆍ승복의 민주적 가치 크게 훼손해

노사정 타협 핀란드서 정치역할 배워야

핀란드가 1968년 국가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이룬 데는 정치의 힘이 컸다. 좌우 대립이 심했던 핀란드의 정치 지도자들이 이념을 떠나 50년대 중반부터 사회 통합을 역설하고 실천한 결과였다. 핀란드는 80년대까지 이 합의를 토대로 보편적 복지국가의 뼈대를 만들었고, 정치적 안정으로 눈부신 성장을 견인했다. 그 과정에 저 합의를 부정(否定)하거나 합의에 불복(不服)하는 시도나 세력은 나오지 않았다. 오랜 기간의 논의와 타협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타협과 승복(承服)의 문화는 생소하다. 타협은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소통과 양보가 전제인데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는 그런 태도에 익숙지 않다.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이 걸린 국가정책을 놓고 관련 주체나 진영이 대립할 때는 더 그렇다. 상황과 명분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한다 해도 나중에 부정하거나 불복하기가 다반사다. 개인의 겸연쩍음이나 여론의 따가운 시선은 잠시다. 눈앞의 이익에 타협과 약속은 헌신짝 신세다.

한국 사회의 부정, 불복 문화는 누가 키웠을까. 다름 아닌 정치다. 핀란드와는 정반대다.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이 가고 사회 각계의 요구가 활화산처럼 분출했을 때, 정치는 타협과 조정을 위한 중재보다 어느 한쪽에 올라타기 바빴다. 특정 진영이나 집단의 요구에 편승하거나 자신들이 대중의 목청을 북돋워가며 우리 사회를 양보와 타협, 수긍과 승복의 민주적 가치와 멀어지게 했다. 왜? 그것이 정치적 이익에 더 유리했으니까.

그런 사례를 찾아 두리번거릴 필요조차 없다.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는 정치에 의한 수많은 불복과 부정이 벌어진다. 진상이 모두 드러난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은 역사 부정이자 사실 규명 결과에 대한 불복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어떤가. 아무리 전 정권의 결정이지만 세계적 전문기관이 객관적으로 사업성을 평가해 김해공항 확장으로 매듭지은 사안이다. 이것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불과 3년 전 결론을 부정하며 뒤집으려 갈등을 키운다. 불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유죄와 구속의 부당성을 거듭 주장하며 법원을 겨냥하고 있다. 재판 불복, 법치주의 부정이다.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인 황교안 전 총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절차상 하자를 주장하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부정하는 ‘태극기 부대’의 불복 목소리에 편승한 것이다.

정치가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고 치유하기는커녕 되레 과거의 결정과 증명된 사실에 대한 부정과 불복으로 충돌을 조장하는 것은 개탄스럽다. 일천한 민주주의 역사와 정치 체제의 구조적 한계 탓일 게다. 권위주의 정권은 정통성이 없어 비판 여론과 ‘떼법’의 눈치를 보느라 우는 아이 떡 하나 주듯 정책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선거로 탄생한 정권은 지지 세력의 눈치를 보다 이도 저도 아닌 법과 제도로 비판을 샀다. 지역에 기반한 정치인들은 국가 전체보다 제 정치생명 연장에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 결정과 합의는 쉬이 번복되거나 없던 일이 됐고, 그것을 목도하고 경험한 정치인은 불복과 부정의 메커니즘을 반복적으로 작동시켰다. 그것이 꼭 정치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민주시민의 기본 자질인 대화와 타협의 기술을 가르치고 배우지 못하는 바람에 정치인과 국민이 승복의 역량과 인식을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탓도 크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불복과 부정의 퇴행적 정치 문화를 방치할 순 없다. 단절과 극복이 필요하다. 민주적 절차와 법 제도에 따라 내려진 결정은 승복하되 하자나 오류는 정치가 아닌, 다시 민주적 절차와 법 제도에 의지해 개선하는 게 순리다. 수많은 침략과 식민 지배, 이념 대결로 위기에 직면했던, 우리와 지정학적ㆍ역사적 특성과 경험이 비슷한 핀란드가 해낸 일이다. 핀란드의 복지가 아닌, 그 복지를 가능케 한 핀란드의 정치를 먼저 배우기 바란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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