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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비웃듯… 배화여고 학생들 3ㆍ1운동 1주년에 다시 “만세” 외쳤다

입력
2019.02.26 04:4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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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부르는 삼월의 노래] 

 일본 경찰에 24명 연행ㆍ투옥 당해… 공적 확인 18명 작년 대통령 표창 

1920년 배화여고 재학 당시 3.1운동 재현에 참여했던 소은명의 생전 모습. 외손자 권일준씨 제공
1920년 배화여고 재학 당시 3.1운동 재현에 참여했던 소은명의 생전 모습. 외손자 권일준씨 제공

3ㆍ1운동이 시작된 지 꼭 1년이 지난 1920년 3월1일 새벽 서울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고. 고요한 교정이 갑자기 분주한 발걸음 소리로 채워졌다. 이 학교 재학생 김경화, 박양순, 소은명ㆍ소은숙 자매 등 40여명이 기숙사 뒤편 언덕과 교정에 삼삼오오 모였다. 이전해 만세운동의 위력을 실감한 일제는 3ㆍ1운동 1주년을 앞두고 만세운동 계획을 담은 문서들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상점과 학교 등에 배포되는 것을 감지하며 주요 학교 주변에서 이를 막을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1920년 3월3일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조선총독부는 수일 전부터 선교회 부속학교 교장들에게 “불미스러운 행동이 일어나게 되면 엄중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경고를 해왔다.

하지만 배화여고 학생들은 이 같은 경고를 비웃듯 교내에서 목청을 높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1년 전 광경을 그대로 재현했다. 이윽고 달려온 종로경찰서 일본 경찰들에 의해 학생 24명은 연행됐고 보안법 위반을 적용받아 김경화는 징역1년(집행유예 3년), 당시 16세였던 소은명 등은 징역 6개월(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98년이 지난 지난해에야 이들 중 공적이 확인된 18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전국적인 독립운동의 물결에는 당시 어린 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 큰 몫을 했다. 유관순 열사 외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전국의 10대 학생들은 학교의 만류와 일제의 눈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대의 중심에서 만세 운동을 펼쳤다.

학생들의 움직임은 대담하고 기민했다.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명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연행된 사이, 수천 여명의 학생들은 군중과 함께 종로ㆍ남대문ㆍ광화문 일대에서 직접 가두 시위를 주도하고 선전 활동에 뛰어들었다. 다음날에도 학생 400여명은 만세 시위를 하며 종로경찰서 앞으로 돌진했다. 3월5일 제2차 투쟁을 위해 전날 배재고등보통학교 기숙사에서 각 중등학교 대표들이 모여 회의를 진행하며 준비하기도 했다. 이들의 항거는 시위에만 그치지 않았다. 3ㆍ1운동 이후 학생들의 등교 및 입학 거부로 전국의 공립학교들은 신입생 미달 사태가 무더기로 일어났다. 일제 기관의 교육을 거부하는 게 저항의 방편으로 널리 인식됐기 때문이다. 경성공립농업학교는 신입생 50명 모집에 33명만이 지원했고, 경북 전체 보통학교 모집 정원 2,376명 중 지원자는 69.6%인 1,654명에 그쳤다. 당시 최고의 의학 전문기관인 경성의전은 등교생이 적어 수업이 중지됐을 정도다.

필연적으로 학생들은 상당한 후폭풍을 견뎌야 했다. 일제는 3ㆍ1운동 직후인 3월10일 중등과정 이상 학교에 임시휴교령을 내려 학생들의 힘을 분산시켰고, 유관순 열사 등 주요 학생들을 잡아 들여 모질게 고문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조사에 따르면 3ㆍ1운동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직업이 확인된 777명 중 13.9%(108명)가 학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1주년 기념 만세운동을 펼친 배재고등보통학교의 교장 아펜젤러와 배화여고 교장 스미스 등은 당시의 일로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교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신한민보 1920년 3월9일자). 조선총독부의 경고를 어기고 학생들의 시위를 방관했다는 이유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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