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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고의 기로에서

입력
2019.02.16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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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순간이었다. 어! 하는 순간 5톤 굴삭기가 넘어간다. 건설 중장비 안전사고로 매년 많은 인명이 숨지거나 다치는 일이 계속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런 경험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정말 그랬다.

사고 순간, 가족들 얼굴과 함께 어디 다치지 않았는지, 머리에 피가 흐르지 않는지, 몸이 움직이는지 체크했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엔진 시동을 끄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쓰러져 있어서 그럴까. 이상하게도 시동이 바로 꺼지지 않는다. 겁이 났다. 뒤쪽 엔진룸과 오른 쪽 궤도에서 하얀 연기와 함께 경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빨리 탈출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앞 유리창이 열리지 않는다. 탈출 망치로 깨야 하나. 한 순간 망설인다. 나중에 돈 들어 갈 생각에 플랜B로 변경한다. 평소 잘 쓰지 않는 오른쪽 쪽문이 다행스럽게도 열린다. 메인 스위치를 잠그고 몸을 90도 회전해 좁은 공간으로 탈출하기가 쉽지 않다.

나와서 굴삭기를 보니 왼쪽 부분 일부가 땅속에 박혀있다. 정말 안타까웠다. 몸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다시 점검했다. 다행히 큰 이상이 없었다. 30년 운전 경력에 교통사고 한번 없었는데 상오산에서 해빙기에 작업로 개척을 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할 뻔 했다. 귀산을 외치다 귀산을 실행하다 귀신이 될 수도 있었다.

굴삭기를 판매한 친절한 울산 사장님께 전화했다. 이후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가능한 한 빨리 굴삭기를 바로 세우라고 말씀하신다. 여기 저기 전화를 했다. 이틀 후에나 일정이 잡힌다. 상주 시내도 아니고 속리산 동쪽 끝 작은 마을에서도 3킬로미터나 떨어진 산속이다. 그것도 길도 없는 산속에 자동차만한 거대한 바위가 강처럼 흐르는 곳에 초라하게 내 굴삭기가 경유와 작동오일을 흘리며 죽어 가고 있었다.

사람은 참 이상하다. 몸이 성하니까 굴삭기 걱정이 앞선다. 후회와 미련이 강진 후 해일처럼 밀려온다. 좀 더 평탄한 곳에서 궤도를 돌리지 못한 소치일까. 붐 대를 조금 더 접어 무게 중심을 잡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산길을 빨리 내야 한다는 일정에 쫓겨 일어난 일이다. 일반인에게 귀농교육을 할 때는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천천히 하라고 강의하면서 정작 자신의 경우는 그렇게 하지 않은 이중성이 밉고 원망스럽다.

이틀 후 15톤 굴삭기가 상오산에 도착해 부상당한 굴삭기를 체인 줄에 묶어세운다. 그리고 평탄한 곳까지 천천히 조심스럽게 운반한다. 한 마디로 처참하다. 굴삭기 출입문이 휘고 유리창 2쪽과 후방유리는 박살이 나서 종이처럼 찢어져 있었다. 왼쪽 백미러는 더 처참했다. 엔진룸 후방에 무게 중심을 잡는 400㎏ 강철 범퍼도 두 동강이 났다. 지난 여름 내게 시집올 때만 하더라도 예쁘고 헌신적이며 매력적인 장비였는데 몇 개월 사이에 주인 잘못 만나 반파되는 신세가 되었다.

오후에 굴삭기 수리기사가 왔다. 상주에서는 제일 유명하다고 한다. 엔진을 해체하고 오일을 걷어낸다. 계속 시동을 걸어도 작동이 되지 않는다. 저녁에도 엔진은 대답이 없어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한다. 다음날 결국 시동이 걸렸다. 계속 하얀 연기와 기름 타는 냄새가 진동 한다.

문득 “내 산에서 법적 절차 받고 개발하는데”에서 생각이 멈췄다. 조촐하지만 고사를 올렸다. 나무와 돌과 흙과 물에게 용서와 이해를 구했다. 아직까지 신령님은 심기가 불편하신 모양인지 동물들이 사과와 고구마, 막걸리를 건들지 않는다. 산에서는 할 수 있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자연과 조금 더 조화로움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가지고 안전하게 진행돼야 한다.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개발, 머리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은 너무 힘들다.

유상오 한국귀농귀촌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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