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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 칼럼] 광주가 쓰는 새로운 역사!

입력
2019.02.1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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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성지는 현실에서 슬펐다

저항에서 상생으로 거듭나자는 타협

생존을 위한 광주의 변화를 도와야

광주는 저항의 도시다. 1980년 서슬퍼런 전두환 군부세력 앞에서 모두가 숨 죽일 때 광주는 분연히 일어났고, 많은 이들이 산화했다. 뜻 있는 사람들은 동참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했고, 마음에 큰 빚을 졌다.

그러나 광주는 슬프다. 민주화의 성지로 명명됐지만, 그 상징만큼 현실에서 겪는 고통은 컸다. 저항의 정서 때문이라고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기업들은 투자를 꺼렸고, 남아 있던 기업들마저 하나 둘 떠났다. 광주의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어 떠나야 했다. 마치 독립투사를 역사가 영웅이라 칭하지만, 그 후손 대부분이 곤궁하게 살았듯이 광주는 외롭고 척박한 섬이었다.

그 섬에서 새 바람이 일고 있다. 갈등과 대립이 끝없이 증폭되는 이 나라에서 사회적 타협에 의한 일자리 만들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다 알려진 바대로 자동차 산업의 글로벌 경쟁에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임금을 낮추고, 현대자동차는 경차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정치인이건 학자건 입만 열면 역설하는 게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이다. 또 하나 누구나 외치는 게 있다. 이 나라가 살아나려면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고. 그러나 정쟁과 대립이 극심한 이 사회에서 타협은 희귀동물을 찾는 것만큼 어려워졌다. 일자리와 사회적 타협을 기본 정신으로 하는 광주의 합의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 어려운 일을 해낸 주역 중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 의장이 있다. 그는 칭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주로 현대차 노조에서 나오는 비난의 골자는 광주의 저임금이 평균 9,000만 원에 달하는 현대차 근로자들의 임금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의장은 말한다. 현대차가 낮은 임금, 새 시장을 찾기 위해 인도나 인도네시아로 가는 것은 괜찮고, 광주는 안 되는 이유는 뭐냐고! 윤 의장은 “광주가 저항과 민주화를 넘어 노사가 평화롭게 사는 도시, 원청과 하청 기업이 상생하는 도시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절실하게 호소하는 그를 보면서 미국 알라바마주에서 자동차 부품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기업인이 떠올랐다. 그는 몇 년 전 미국 공장을 확장하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던 중 인근 조지아주 정부로부터 최고 골프대회인 마스터스에 초청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한국인 2명을 포함 25명이 초대됐는데 평생 그런 환대는 처음 받았다고 한다.

주지사 관저로 초대됐으며 주한미군 근무 경력의 중장 출신 예비역 자원봉사자가 안내를 해줬다. 기업인들을 태운 버스 2대는 교통통제로 논스톱으로 운행했고, 공항 출입절차를 생략한 채 오거스타 골프장으로 가는 비행기 앞까지 직접 가도록 하는 등 귀빈 중 귀빈으로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연간 1달러 임대료를 내는 알라바마 공장의 조건이 더 좋아 증축을 결정했지만 뭔가 투자하지 않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최근 헝가리에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한 기업은 깜짝 놀랐다. 헝가리 정부가 낙후지역에 투자하는 외국기업에 대해선 투자금의 50%를 반환해주고, 인프라가 구비된 공업지에 투자하면 25~30%를 반환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인센티브로 외국기업들이 몰려들어 해당 예산이 바닥났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기업이 부지를 계약하려 하자, 담당 공무원이 연락을 해서 “먼저 서류를 제출해야 나중에 투자금 반환이 가능하다”고 조언하고, 이에 따라 서류를 제출했더니 속성으로 3일 만에 처리해줬다고 한다.

그렇다. 전 세계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뛰고 있다. 간, 쓸개 빼놓고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는 이 정도는 아니지만,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모색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문제도 있고, 허들도 많을 것이다.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좌초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상생과 타협, 일자리를 논할 수 없을지 모른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광주가 달라지면, 나라가 바뀔 수 있다. 광주의 변화에 힘을 보탰으면 한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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