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문명의 희비 가른 마력… 말(言)은 말(馬)을 타고 퍼져나갔다

알림

문명의 희비 가른 마력… 말(言)은 말(馬)을 타고 퍼져나갔다

입력
2019.02.07 16:30
수정
2019.02.07 19:05
23면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말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먼 거리를 내달리는 네발 짐승이다. 가장 똑똑하지만 몸은 약하고 발은 몹시 느린 두발 짐승 인간은 말의 속도와 힘을 이용해 문명을 개척해왔다. 말의 힘, 마력(馬力)은 인간 사회 발전을 가능하게 한 커다란 원동력 중 하나였다. 미국 문화인류학자인 피타 켈레크나가 쓴 ‘말의 세계사’는 마력이 인류 문명에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지를 고고학, 역사학, 언어학 등 분야의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통찰력 있게 풀어 낸다.

말은 인류에게 핵심 군사 전력이었다. 책은 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파괴적인 정복 전쟁의 역사를 시기별, 대륙별로 광범위하게 짚는다. 인간이 말을 사육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000년 전 무렵이다. 물이 풍부했던 원시 문명의 중심부가 아니라 아프리카 북동부 누비아 사막과 흑해-카스피해 초원 지대 등 변방 지역에서 사육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부터 인간은 말을 전쟁 무기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사육된 말의 활약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유목민이었던 변방의 기마 부족은 말을 타고 나가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농경 문명 중심지를 약탈하고 제국의 군대를 무자비하게 공격해 영토를 빼앗았다. 저자는 이를 ‘기마 군국주의’ 라고 부른다.

말은 인류 문명을 이어주는 메신저 역할도 했다. 말의 기동성 덕분에 대륙을 아우르는 물품 교역과 문화 교류가 가능해졌다. 말이 없는 문명에 사는 인간 짐꾼은 기껏해야 하루 20㎞ 남짓을 걸으며 소량의 짐을 낑낑대며 운반했을 뿐이지만, 칭기즈칸의 정예 전사들은 말을 타고 매일 400㎞씩 달릴 수 있었다. 기마병의 광범위한 이동 경로는 신기술의 도입, 외국 발명품의 전래, 사상의 유포, 종교의 전파, 과학과 예술을 확산 시키는 데 일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때문에 ‘말이 있는 문명’과 ‘말이 없는 문명’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특히 종교와 언어를 확산시키는 데 말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대부분의 종교가 발현한 지역에 머무른 데 반해,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가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명의 신도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도 ‘말’이었다. 4대 종교가 모두 말을 타고 퍼져나갔다. “이 종교들은 기마술과 완전하게 연결된다. (…) 4대 종교는 기마 제국들이 형성되던 기원전 2000년과 기원후 1000년 사이에 나타났다. 4개 종교 모두 말 조각상들로 가득하다.” 전 세계 65억 인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모국어로 인도∙유럽어족 언어를 사용하는 것 역시 기마인 팽창 덕분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거꾸로, 아메리카 문명이 널리 전파되지 못한 까닭 또한 말을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서 야생 말은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 등으로 9,000년 전쯤 멸종했다. 유라시아 대륙이 말을 왕성하게 사육한 시기에도 아메리카 대륙은 말을 키우는 데 힘을 쏟지 않았다. 말의 부재는 문명의 정체로 이어졌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중앙아메리카와 안데스산맥 등에서 놀라운 문화적 성취를 이뤄냈지만, 말을 활용하지 못한 탓에 대륙 너머로 널리 전파시키지 못했다. 예컨대, 말을 이용하지 못한 마야인은 ‘0’(zero)의 개념을 인도인보다 500년 앞서 발명하고도 이를 널리 퍼뜨리지 못했다.

말의 세계사

피타 켈레크나 지음ㆍ임웅 옮김

글항아리ㆍ752쪽ㆍ3만8000원

저자는 인류에게 말은 양면적인 존재라고 결론 내린다. 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켰지만, 한편에선 정복 전쟁으로 인류의 파괴적인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다. “말의 힘은 인류에게 특별한 기동성을 부여했고 경이로운 문화적 성취를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말이 받아들여지면서 인간 갈등의 속도와 규모, 그리고 강도가 크게 증가했다. 말에 걸터 앉은 인간은 지적으로 뛰어나지만 무자비하게 파괴할 수 있는, 반은 신이고 반은 야수인 켄타우로스가 됐다.”

이런 이유로 인류가 마력의 위대한 속도를 활용하더라도, 파괴가 아닌 협력으로 이끌어가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더 이상 정복 전쟁이 아닌 지식과 기술의 공유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가속을 끝없이 추구하다 보면 네발 짐승보다 더 이성적인 인간은 전혀 다른 형태의 속도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멈추지 않는 정복의 오만한 태도에서 벗어나 세계의 도전에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