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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사람이 답이다

입력
2019.02.01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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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건축물을 찾아다니며 깊이 들여다본 지가 올해로 십년째다. 작은 소읍이나 구도심을 헤매다 보면 적잖은 근대건축물들을 만난다. 그런 곳은 인적이 드물어서 오히려 낡고 오래된 건축물들이 거리의 주인처럼 보였다. 구룡포의 어느 집 문틈으로 보았던 할아버지의 주름진 팔과 앙상한 다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쇠락해 가던 건물과 어르신의 모습이 왜 그리 닮아 보였던지. 아슬아슬한 장소들도 많았다. 대전 대흥동 재개발 지역 마을의 모든 집들이 철거된 잔해 위에 집 하나가 달랑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 뾰족집이라 불리던 이 집은 철거 직전 문화재로 등록돼 겨우 살아남았지만 그곳에 남지 못하고 해체돼 다른 곳에서 허술하게 재조립됐다. 그때는 보았지만 지금은 사라진 곳도 많다. 거대한 대구 연초제조창은 벽돌창고 하나만 남은 채 주상복합 아파트로 바뀌었다. 아내와 함께 가능한 자주 가서 살펴보는 화호리 마을 일제강점기 유적들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운명이다. 미곡창고는 지붕이 내려앉았고 우체국으로도 사용했다는 화려한 일본식 가옥도 거의 무너지기 직전이다. 언제 사라질지 모르니 있을 때 자주 가서 보자는 교훈을 얻었다.

뭐하러 이런걸 보러 오냐며 동네 어르신들은 자주 물었다. 건물이 예쁘다고 하면 어르신들은 신이 나서 알고 있는 이야기를 몽땅 들려준다. 여기서 살았노라고, 건물을 반으로 나눠서 다른 사람들과 살기도 했고 그전에는 일본인 누구의 관사로 쓰였다는 둥, 어디서도 듣지 못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집은 작지만 이야기는 깊고 다양했다.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 건물이 다르게 보인다. 건축가의 상상력을 더해보며 건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여행 초기만 해도 많은 건물들이 방치돼 있었는데, 불과 몇 년 사이 근대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아졌다. 이제는 철거보다 남겨 두자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많은 건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복원 과정을 거쳤다. 근대문화거리도 생겨 마을이나 거리 풍경이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눈에는 뭔가 석연찮고 불편하다.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지원금이 투입되지만 과연 제대로 복원이 됐는지, 건물 복원으로 거리가 얼마나 활성화됐는지, 이런 질문에 긍정적 답을 내놓을 곳은 많지 않다. 내 눈에는 옛 건물의 복원이 아니라, 새 건물로 만들어 버린 것 같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전시물과 단순 체험시설로 썰렁하기만 했던 공주 옛 읍사무소는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쇠락의 길을 걷는 마을에 새 건물처럼 꾸민 건물이 있다 해서 갑작스럽게 관광지가 될 리 없다. 공간 계획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근대문화거리라면 독특한 감성과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람을 감동시키려 하지 않고, 도로 닦고 가로등 세우고 조형물 놓는 정비에 몰두한다. 부산 초량의 우유카페나 수영의 f-1965 같은 감각과 아이디어는 절대 관(官) 차원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사람 마음을 감동시키는 지 다시 생각해 볼 때가 아닐까? 해답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살아야 해결이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와서 새로운 일들을 벌여야 사람이 모이고 집이 살고 거리도 산다. 집도 거리도 사람을 원한다.

목포 근대건축물들이 때아닌 집중을 받았다. 근대건축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차근차근 들여다보니 우리가 근대건축을 살리는 데 최고의 해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공교롭게도 손혜원 의원 방식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이 살게 하며 건물의 콘텐츠를 어떻게 발전시킬까 고민하는 것 말이다. 아이디어 넘치는 젊은이들이 모여야 거리가 산다. 어떤 지원을 하든 정비가 아니라 그곳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사람에게 지원하기 바란다. 쉽게 말하면, 사람에게 더 투자하라. 그것이 도시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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