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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 김서형 "김주영은 악녀보단 불쌍한 여자... 작품 찍으며 이렇게 많이 운 건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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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캐슬' 김서형 "김주영은 악녀보단 불쌍한 여자... 작품 찍으며 이렇게 많이 운 건 처음"

입력
2019.01.30 07: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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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 뒤틀린 입시 코디 역할 

 올백 올림머리ㆍ억누른 대사로 

 내면의 악을 서늘하게 표현 

배우 김서형은 JTBC 드라마 'SKY캐슬'을 찍으며 제작진을 원망했다. 입시 코디네이터인 김주영의 연기가 버거워서였다. 그는 "제작진이 날 너무 과대평가했다"고 했다. 또 "김주영이 혜나(김보라)를 예서(김혜윤)의 집에 들여 보내려 했을 때는 '멘붕'이 와 촬영 중 PD와 얘기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김서형은 JTBC 드라마 'SKY캐슬'을 찍으며 제작진을 원망했다. 입시 코디네이터인 김주영의 연기가 버거워서였다. 그는 "제작진이 날 너무 과대평가했다"고 했다. 또 "김주영이 혜나(김보라)를 예서(김혜윤)의 집에 들여 보내려 했을 때는 '멘붕'이 와 촬영 중 PD와 얘기하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플라이업 엔터테인먼트 제공

“산전수전 공중전 많이 겪어봤는데 작품 찍으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은 처음이에요.”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 종합편성채널(종편) JTBC 화제의 드라마 ‘SKY캐슬’ 마지막 방송 한 회를 남겨 두고 만난 배우 김서형은 “작품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서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류층 학생의 성적 향상을 돕다 가정을 파국으로 모는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연기했다. 뒤틀린 욕망에 사로잡힌 캐릭터로 살다 보니 김서형도 우울함에 빠졌다. 대본을 읽다 답답한 마음에 새벽 3~4시에 집 밖으로 뛰쳐나오기도 했다고 한다.

김서형은 인터뷰 도중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김주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비서 조 선생 역을 맡은 배우 이현진과의 호흡을 묻자 나온 예기치 못한 반응이었다. 김주영과 함께 나락에 빠진 조 선생 얘기를 꺼내다 자신의 캐릭터로부터 전이된 한과 울분이 터져 나온 듯했다. 김주영이 자신의 과도한 교육열로 딸 케이를 비극으로 몬 원죄가 있었다면, 조 선생은 마약에 빠져 살던 상처를 지닌 인물이었다. “외로운 사람들이었죠…” 김서형은 붉어진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훔치느라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연기하고 있는 김서형(오른쪽). JTBC 제공
JTBC 드라마 ‘SKY캐슬’에서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연기하고 있는 김서형(오른쪽). JTBC 제공

‘SKY캐슬’은 화제 제조기였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부작용 등 적나라한 교육 현실을 풍자하며 관심을 끌어 모았고, 비(非)지상파 방송 역대 최고 시청률(23.2%ㆍ닐슨코리아)을 기록했다. 드라마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김서형에게 ‘SKY캐슬’은 전쟁터를 의미했다. 시청자들이 환호하며 온갖 패러디를 쏟아낸 김주영의 명대사 “감수하시겠습니까”부터 그의 발목을 잡았다. 드라마 초반, 김주영이 자신의 앞에서 예서(김혜윤)를 맡아달라 무릎 꿇고 비는 한서진(염정아)에게 던진 말이었다. 김서형은 “시대극도 아니고 ‘감수하시겠습니까’란 말은 일상에서 잘 안 쓰는 표현이라 그 분위기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대본을 보고 막막했다”고 말했다.

대사에 독기를 불어 넣기 위해 김서형은 머리카락 한 올도 흐트러짐 없는 ‘올백 올림머리’를 했다. 사극이 아니면 배우들이 촌스럽다고 여겨 좀처럼 하지 않는 머리 모양이었다. 김서형은 카메라 앞에 설 때 검은색 옷과 연약한 목을 감추는 상의만 고집했다. 과거를 숨기고 김주영의 그늘을 보여주기 위해 김서형이 낸 아이디어였다.

김서형이 ‘SKY캐슬’을 찍으며 가장 경계했던 건 답습이었다. ‘악녀 김서형’이 익숙한 그림이 될 수 있을 거란 우려였다. 시청률 30%대를 웃돈 SBS 드라마 ‘아내의 유혹’(2008)에서 연기한 신애리, MBC 드라마 ‘기황후’(2013)의 황태후 역으로 표독스러운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서형은 웃는 장면을 찍을 때마다 조현탁 PD에게 “과하면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행여 신애리 분위기가 날까 봐 한 걱정이었다. 김서형은 “신애리가 지금의 날 배우로 존재하게 했지만 그 모습이 습관처럼 나오는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고백했다. “시청자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연기했다는 것만 기억”하는 것에 대한 배우로서의 자성이었다.

쉬지 않고 자신을 경계한 덕에 김서형은 ‘SKY캐슬’에서 다른 길을 갔다. 폭발하지 않고 속삭이듯 유혹하는 악마의 몸짓. “김주영은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서 파우스트에 내면의 악을 만나게 하는 메피스토”(소설가 박생강) 같다. 격정을 지우고 대사 억양까지 낮춰가며 서늘하게 캐릭터에 어둠을 들인 덕이다. 김서형은 ‘노력파’였다. 학창시절 방송반 활동을 했던 그는 소리 내 책을 읽은 뒤 녹음해 다시 듣는 게 취미였다. 발음이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김서형은 “시옷 발음이 새는 게 문제”라고 했다.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요즘도 (발성과 명확한 대사 전달을 위해) 집에서 책을 큰 소리 내 읽는다”며 웃었다.

내달 1일 종방할 ‘SKY캐슬’은 지난 25일 촬영이 모두 끝났다. 김서형은 인터뷰 장소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고 나왔다. 가벼운 차림이었다. 꽉 묶었던 머리카락도 풀었다. 드라마와 정반대로 자연스럽고 소탈한 모습이었다. 김서형은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며 가볍게 웃었다.

김서형의 교육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자식이라고 해도 엄마 뱃속에서 나와 울음을 터트릴 때 이미 하나의 인격이 태어난 것”이라며 “자유롭게 (생각을) 나눠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본을 받고 ‘정말 이렇게까지 할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다만 지금이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해하며 드라마를 찍었다”는 말도 보탰다. 작품과 달리 김서형은 여유가 넘쳤다. 차기작 부담을 묻자 “그런 고민 안 한다”고 웃으며 선수를 쳤다.

“많은 분이 악역만 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 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작품에서 센 캐릭터를 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신애리와 기황후 그리고 김주영 다 한이 많고 불쌍한 여인들이었어요. ‘난 왜 이렇게 고독하고 불쌍한 캐릭터만 맡게 될까’란 생각을 오히려 했죠. 다음에도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캐릭터가 오면 주저하진 않을 거예요. 다른 색으로 변주하면 되니까요.”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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