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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정치인 황교안

입력
2019.01.2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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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1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여성정치아카데미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1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한 호텔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여성정치아카데미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두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그럼 박근혜 정부에서 잘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까?”

지난해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사석에서 만났을 때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책임이 몇 달 뒤 6ㆍ13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치리란 얘기가 나왔었다. 민심에 비춰볼 때 야권에 힘겨운 싸움이 되리라는 예상이 주를 이뤘다. 그런데 한동안 듣기만 하던 황 전 총리가 이렇게 말문을 연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이자 탄핵 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그로선 듣기 불편할 법한 대목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잘해야 본전이고 잘못하면 몰매를 맞는 게 정치다. 하물며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이 탄핵시킨 정권의 과(過)를 따지는 여론이 억울했던 걸까. 그래서 치른 조기 대선이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말이다.

이런 일화도 떠오른다. 임기 중 황 전 총리가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공관으로 초대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 한 의원이 그에게 이런 농을 던졌다고 한다. “머리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던데, 가까이서 보니 아주 자연스러운데요.” 순간 그가 입을 앙다물었다. 주위 분위기도 당연히 얼어붙었다. 예능이 다큐가 된 것이다. 동석했던 의원의 말이다. “정치인들은 으레 그런 농담도 웃으며 받아 치는데, 총리가 정색을 하니까 의원들이 (마음을 풀어주려고) ‘황비어천가’를 부르더라.”

새삼 이런 일들을 떠올린 건, 15일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그가 밝힌 일성 때문이다. “국가적 시련으로 국민에 심려를 끼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방점은 다른 데 찍혔다. “그것(국정농단)으로 인해 모든 공무원을 적폐란 이름으로 몰아가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잘못된 부분과 잘한 부분을 그대로 평가해야지 모든 것을 국정농단이란 말로 재단하는 건 옳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과라기 보다는 항변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2인자로서 억울하다는 ‘정색’이었다.

그가 정치를 시작했기에 하는 얘기다. 그저 박근혜 정부의 관료로서 재야에 머무른다면, 그가 사과하든, 억울해하든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는 1야당의 당 대표 경선에 출마하려 시동을 걸었다. 보수가 무너져 정권을 내주고도 아직 개혁의 ‘ㄱ’자도 그리지 못한 당의 구원투수, 그걸 넘어 보수의 차기 주자까지도 꿈꾸는 듯하다.

황 전 총리가 전당대회에 출마한다면 해볼 만한 싸움이 될 것이다. 경쟁자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나섰지만, 탄핵 때 탈당했다가 복당한 그로선 국정농단의 책임론을 전선으로 긋기엔 명분이 약해졌다. 최근 황 전 총리에게 날을 세우는 홍준표 전 대표가 출마 쪽으로 마음을 바꿨는지 모르지만, 그 역시 지방선거 참패로 스스로 물러난 터라 승리의 동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황 전 총리가 출마를 결심했다면, 이런 상황과 구도를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꽃가마가 늘 꽃길만 지나는 건 아니다. 정치는 곧 책임이기 때문이다.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창업(創業)보다 수성(守成)이 어렵다고 했는데 황 전 총리는 창업이나 수성보다도 어려운 재건을 해야 할 자리를 정계 입문의 관문으로 택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로 민심이 성날 대로 성났던 2016년 7월, 황 전 총리가 경북 성주 군민들을 설득하러 직접 내려갔다. 그가 주민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자 얼마 안돼 욕설과 날달걀, 물병이 날아들었다. 버스로 몸을 피했고 안에서 6시간을 버텼다.

그러나 이제 정치인이 된 황교안은 버스에서 내려야 한다. 오물을 맞더라도 귀를 열어 듣고, 설득하고, 생각이 다른 이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그 책임의 무게를 견딜 준비가 얼마나 돼있는지 모르겠다. 정색하는 얼굴로 봐서는 아닌듯싶다.

김지은 디지털콘텐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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