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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ㆍ담] “韓ㆍ日 당분간 냉각기 불가피... 경제협력ㆍ공공외교로 극복해야”

입력
2019.01.18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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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용 고려대 명예교수ㆍ전 주일대사 

최상용 전 주일 대사는 1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쉽지 않지만 정부가 역사 문제와 외교 문제를 조화할 접점을 찾아야 하고 그런 정책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최상용 전 주일 대사는 1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쉽지 않지만 정부가 역사 문제와 외교 문제를 조화할 접점을 찾아야 하고 그런 정책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강제징용, 위안부 등 한일 과거사 갈등을 풀려면 우선 우리 정부가 책임을 갖고 꼬여 있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 구체적이고 합리적으로 일본에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주일 대사를 지낸 최상용(77) 고려대 명예교수는 1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당분간 한일 냉각기가 불가피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최 교수는 한일 관계의 값진 이정표로 평가 받는 1998년 ‘김대중ㆍ오부치 공동선언‘ 준비에 깊이 간여했고, 그 뒤 학자로는 처음 주일 대사를 맡아 양국 화해와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애썼다. 본업인 학계로 돌아와서는 ‘중용‘ ‘평화’ 등의 정치사상 연구에서도 업적을 냈다. 수습은커녕 갈등의 전선이 더 커져가는 한일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들었다.

-한일관계가 첩첩산중이다.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고, 거기에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덮쳤다. 주일 대사 시절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로 소환까지 된 경험이 있는데.

“20년 전 신문들은 ‘소환’이라고 썼지만 사실 외교사에서 ‘소환’은 외교 단절 직전의 매우 엄중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공식적으로는 ‘외교 협의차 귀국’이었다. 교과서 문제로 한일 갈등이 극심했지만 그래도 당시는 한일 정상 간 신뢰가 있었다. 한국은 김대중 대통령, 일본의 카운터파트는 오부치, 모리, 고이즈미 총리였다. 공동선언까지 낸 오부치 총리와의 신뢰는 말할 것 없다. 모리 총리도 그 선언에 적극 참여한 인물이다. 야스쿠니 참배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을 파란만장한 일을 겪은 정치 대선배로 존경한다고 했다. 그런 상호 신뢰와 존중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교과서 문제에서도 본국의 명을 받아 일본 정부와 국민을 대상으로 당당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 결과가 후소샤 교과서 채택률 0.039%였다.”

-지금 한일 관계는 얼마나 나쁜 상황인가.

“무엇보다 우려할만한 것은 정상간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명박ㆍ빅근혜 정부 이후로 한일 간에 의미 있는 정상회담을 한 기억이 없다. 김대중ㆍ오부치 공동선언 때처럼 중요한 전략 구상을 갖고 만난 적이 없고 사실상 모든 채널이 중단된 상태로 보인다. 게다가 양국 국민이 서로를 아주 나쁘게 인식한다. 평균적인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80% 이상 부정적이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싶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일협정에 따른 외교 협의를 요청했다. 일본은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까지 가지고 갈 의향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한일 관계에 대한 우리의 설명이 부족하다. 국민감정을 우선해 도덕적 우선권을 주장하고 피해자로서의 분노만 앞세워서는 해결이 안 된다. 쟁점이 무엇인지 사실 확인도 불충분하고, 그 사실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책임도 부족하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한일간의 약속이다. 하지만 우리 대법원 판결 또한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둘은 현실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조화가 어렵다. 그렇지만 이를 양립시켜야 하는 것이 주어진 과제인데 우리 정부는 일본이 납득할만한 논리적 설명이나 정책 구상을 내놓지 않고 각각 일리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나마 다행은 문재인 대통령도, 아베 총리도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거듭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투트랙’까지 언급했다. 올바른 방향이지만 그를 위한 행동 계획이 없다.”

-한일 사법부의 정반대 판단이 국민의 지지를 얻는 상황이어서 대화의 접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배상 문제의 대원칙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국가간 협정으로 개인배상 문제가 소멸될 수 없다는 논리는 일본도 거부하기 힘들다. 협정 전체 해석을 두고 대립해봐야 결국 해법을 찾기 힘들다. ‘개인배상‘ 같은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아 대화의 폭과 깊이을 확장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도 어정쩡하게 봉합한 상태다.

“우리 정부는 재협상 하지 않는다면서 합의의 중요한 부분인 재단 해체를 결정했다. 국민은 납득하는 것 같지만 두 가지 상황을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조합해 일본에게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 그러려는 시도도 없다.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갈등으로 한일은 당분간 냉각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최근 일본 해상자위대의 위협 비행과 우리 해군의 레이더 갈등은 어떻게 보나.

“위안부 문제로 불거진 갈등이 강제징용 판결로 악화해 한일 관계가 극도로 나빠지면서 생긴 일이다. 확인된 사실을 토대로 협의를 하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다. 일본 자위대와 우리 군이 적의를 가질 이유가 없지 않나. 양국 감정이 너무 나빠진 상태라 쉽게 풀릴 문제도 꼬이는 것이다.”

-한일 지도자는 모두 기회만 있으면 ‘미래지향적 관계’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과거퇴행적 관계’에 발목 잡혀 있다.

“양국이 ‘과거를 직시한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 ‘과거 직시’의 강도가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 일본은 ‘이 정도로만 하자’는 것이고, 우리는 과거사 문제는 과거사대로 계속 따져보자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대로 외교는 외교대로 하자는 것은 틀리지 않다. 다만 역사 문제와 외교 문제를 조화할 접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런 정책 구상을 내놓아야 한다. 갈등을 오래 끌지 않으려면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역사’와 ‘외교’를 별개로 하는 투트랙 전략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다.

“외교는 국가이익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상대국의 국가이익을 서로 이해해야 한다. 상대국이 특정 문제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 관심사를 서로 인정해야 그걸 바탕으로 접점을 찾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 외교에서 일방적 승리란 없다. 승리는커녕 차선이나 때로 차악을 선택해야 할 경우도 많다. 하지만 역사란 그 나라의 애국사나 마찬가지다. ‘나라 사랑’의 정신으로 기술한 것이니 논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해와 피해의 역사로 얽힌 한일 관계는 ‘역사문제와 국민감정’이라는 한 축이 있고, ‘외교관계와 국가이익’이라는 또 다른 축이 있다. 한 쪽을 너무 앞세우면 다른 쪽이 망가진다.”

-한일 갈등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거라는 말로 들린다.

“한일 관계에서 역사문제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사문제를 사실 인식과 해석 문제로 나눠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확인된 사실에 바탕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의 특정 시기 정부의 역사관보다 평균적인 일본 국민을 신뢰해야 한다. 그래야 공공외교가 가능하다. 한일 교과서 갈등 때 그렇게 했고 실제로 통했다. 국민 80%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선언한 김대중 대통령처럼 신념 있는 지도자의 결단도 중요하다.”

-지난해는 김대중ㆍ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이었는데 한일 관계가 나빠 주목 받지 못한 것 같다.

“김대중ㆍ오부치 선언의 가장 큰 특징은 ‘65년 체제’의 가장 불완전한 대목인 역사문제를 공론화해서 합의했다는 점이다. 20세기 한일 관계를 매듭 짓고 21세기를 지향한 이 선언의 키워드는 ‘상호 인정’이다. 갈등 당사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화해하자는 정신을 담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 모두 이 선언을 지지하며 이어받는다고 했다. 놀랍게도 아베 총리 역시 지난해 10월 도쿄에서 열린 20주년 행사에서 당시에는 이 선언에 찬성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훌륭한 결단이었다고 선언을 높이 평가했다.”

-한반도 비핵화나 미중 갈등 대응에도 일본과의 적극적인 소통과 협력이 도움이 될까.

“일본의 중대 외교 현안으로 3가지를 꼽을 수 있다. 북방영토 반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북일 국교정상화다. 이 중 마지막이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아베 총리는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기를 희망하고 우리도 북일 정상화를 지지한다. 북일 정상화가 한반도 평화 공존에 도움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 비핵화 필요성을 미국보다 더 일관되고 강하게 주장해온 나라가 일본이다. 고이즈미 방북 때 북일 정상화가 됐더라면 북핵 문제가 이만큼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본의 역할에 대한 문제의식이 지금 정부는 부족한 듯하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양국 관계로 시야를 좁힐 필요가 없다. 인구가 5,000만을 넘으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 수준 이상인 나라는 7개국이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동아시아에서 일본 한국이다. 2,500년 전부터 세계의 중심은 동아시아와 유럽이었다. 현대에 들어 유럽에 미국이 추가되었고 동아시아에 일본과 한국이 더해졌다. 게다가 아시아 28개국 가운데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는 일본과 한국뿐이다. ‘비핵 평화’라는 국제 이니셔티브를 일본과 한국이 함께 쥘 수 있다. 그러려면 더 활발한 경제 교류, 공공외교, 문화외교를 통해 지금 같은 냉각기를 지혜롭게 넘겨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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