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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너무 지나친 감사의 표현

입력
2019.01.21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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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블룸버그는 지난해 11월 모교 존스홉킨스대학에 18억달러의 장학금용 재원을 기부했다. 블룸버그는 장학금으로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공부했던 것에 감사하며 “장학금이 아니었으면 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1년 뒤 불과 5달러를 학교에 기부할 능력밖에 없었다. 하지만 1981년 설립한 세계적인 금융정보회사 블룸버그의 성공에 힘입어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액수는 모두 33억달러에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다니던 대학뿐만 아니라 초등ㆍ중학교에, 그리고 자신을 치료해 준 병원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부를 한다. 칭찬 받을 만한 이러한 기부는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실효적 이타주의” 운동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 블룸버그는 이런 생각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가 최근 기부에 대해 “가족의 은행 잔고 때문에 자격 있는 고등학생들의 대학 입학이 가로 막혀서는 안 된다”고 이유를 말했기 때문이다.

다른 부유한 국가들과 달리 미국의 학생들은 높은 학비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단과대학이나 종합대학에 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학자금 대출 제도가 있지만 졸업 후 상환해야 한다. 블룸버그는 (나를 고용하고 있는 프린스턴대학을 포함한)소수의 기부 대상에 또 하나의 대학을 추가해 돈이 없는 그 대학의 학생들이 학자금과 생활비 전액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물론 블룸버그의 선행은 존경 받을 만하다. 3선 뉴욕 시장인 그는 레스토랑과 실내 흡연을 금지했고, 온실가스 배출을 19% 감축하는 등 공기 오염을 줄여 뉴욕을 건강한 도시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불법총기 소지 규제 캠페인을 전개했고, 비영리 단체인 ‘총기로부터 안전한 마을‘(Everytown for Gun Safety)을 설립해 자금을 지원했다.

올해부터 전세계 부자들의 자선 활동 순위를 매기기 시작한 포브스지를 보면 블룸버그는 지금까지 55억달러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나온다. 기부 총액과 그 금액이 기부자의 전재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한 이 순위를 보면 블룸버그는 워런 버핏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이어 3위이다. 블룸버그는 자신의 재산 중 적어도 절반 이상을 자선 활동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 선언에서 “전 재산을 지속적으로 기부하거나 재단 형태로 남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38억달러의 기부금을 확보한데다 학부생에게 연간 5만3,740달러의 학비를 부담시키는 대학에 불룸버그가 기부하는 것에 나는 갈채를 보낼 수 없다. 내가 그보다 눈 여겨 보는 것은 사업가 행크 로완의 사례다. 그는 1992년 뉴저지에 있는 글래스보로 주립대학에 1억달러를 기부했다. 당시 그 학교는 78만7,000달러의 기부금을 모아둔 상황이었고 연회비는 약 9,000달러에 불과했다. 로완은 훌륭한 대학인 MIT를 졸업했고 모교에 감사하고 있지만 그것이 기부의 동기가 되지는 못했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사람에게 더 제공하는 것보다 고등교육 체제의 약한 고리를 강화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었다.

감사 같은 개인 감정보다 최선의 행동을 우선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개인 감정을 완전히 배제할 필요는 없다. 블룸버그는 감사하는 마음에 따라 존스홉킨스대학에 100만달러를 기부했다. 이것은 그가 모교에 대해 느꼈을 마음의 빚을 갚고도 남는 것이다. 나머지 17억 9,900만달러는 최선의 방향으로 쓸 여지를 남겨둔 상태다.

다행히 아직 늦지 않았다. 2014년 이후 블룸버그의 재산은 50% 더 불어나 480억달러에 이르렀다. 그가 균등한 교육 기회를 더 늘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면 로완처럼 가난한 교육기관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 분야에서 정말 약한 고리는 미국에 있지 않다. 또 한 명의 인상적인 자선가인 조지 소로스는 중앙유럽대학(Central European University)을 설립해 전세계에서 온 학생들이 새로운 교육 기회를 얻도록 했다. 그는 특히 중ㆍ동유럽의 과거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학생들에게 관심을 가졌다.

지금 교육을 갈구하는 곳은 개발도상국이다. 이 국가의 많은 아이들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다. 케냐 초등학교 교사는 월급 1만7,000실링이나 연봉 2,000달러로 일을 시작한다. 18억달러는 앞으로 50년 동안 이런 교사 1만8,000명에게 줄 수 있는 급여에 해당한다.

교육이 최고의 선행은 아니다. 인터넷 뉴스사이트 복스에 실린 실질적인 이타주의에 관한 기고에서는 자선운동가의 평가를 인용해 블룸버그가 18억달러를 말라리아퇴치재단(the Against Malaria Foundation)에 기부해 더 많은 모기장을 나눠주면 40만명 이상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설립한 비영리단체인 ‘당신이 구할 수 있는 생명’(The Life You Can Save)의 사업처럼 그 외에도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이미 비용 대비 효과가 크다고 입증된 방법을 이용한 자선활동은 많다. 그리고 그런 도움은 백만장자들만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피터 싱어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 교수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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