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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엄마, 세상에 외치다] “일반학급 속 장애아, 반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게 통합교육 아닌가요”

입력
2019.01.14 13:18
수정
2019.01.14 18:39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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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일반학교의 장애아 특수학급 운영

삽화 박구원기자
삽화 박구원기자

최근 특수교사 한 분을 만나 담소를 나누다 “헉!”하며 소리를 질러버린,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일반 학교 내에 있는 특수학급은 통합교육이 잘 이뤄지도록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급”이라는 것이다.

“그게 왜 놀랄 일이야? 당연한 말이잖아”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있을 줄로 안다. 그런데 이 당연한 말 속에 얼마나 많은 뜻이 숨겨져 있는지를 알게 되면 그때부턴 옆으로 갸우뚱했던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씩 풀어본다. 이 당연한 말 속에 담겨있는 진짜 의미를.

모든 부모에게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은 아주 특별한 일이다. 언제 이렇게 컸나 눈물이 핑 돌기도 하고 마냥 대견하기도 하며, 아직 어린 이 아이가 과연 학교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잘 놀까 걱정도 한다.

보통의 아이들도 그런데 장애 아이를 둔 부모들은 어떨까. 날이 갈수록 걱정과 불안이 무럭무럭 커진다. 그러다 입학식 날이 온다. 수십, 수백 명의 아이들이 강당이나 체육관 앞쪽에 모여 있고, 꽃다발을 손에 든 부모들은 뒤에 서서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있다. 식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애가 있는 아이가 자리에서 이탈해 교장 선생님이 연설 중인 무대 위로 올라가려 한다. 또는 제자리에서 일어나 팔짝팔짝 뛰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담임교사와 특수교사가 후다닥 달려와 아이를 앉히려 하지만 낯선 어른들의 다독임을 ‘제압’으로 받아들인 아이는 더 큰 반항으로 화답한다. 결국 군중 속에 조용히 섞여 있던 아이의 엄마가 종종걸음으로 달려 나와 아이를 어르며 식장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데 뒤통수가 뜨겁다. 꽃다발을 손에 든 수백개의 시선이 자신과 아이에게 집중돼있는 걸 느낀다.

장애 아이를 키우면서 숱하게 받아온 시선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거리에서의 시선은 스쳐 지나면 그만이었지만 학교 내에서의 시선은 앞으로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를 보여준다.

자식에게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부터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은 더 이상 내려갈 데도 없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바닥까지 내려갔으면 지하가 있었다. 지하 1층, 지하 2층… 눈물이 주르륵. 그렇게 모두에게 기쁜 날이어야 할 입학식에 거나한 신고식을 치른 장애 아이 엄마는 잔뜩 위축된 마음으로 다음 날 첫 수업에 아이를 들여 보낸다.

요즘은 장애 아이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부모교육이 활성화돼 있어서 이미 엄마들은 이런저런 많은 정보로 무장하고 있다. 부모교육에서 늘 듣던 말 중에 하나가 “당당하게 요구하세요”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와보니 그동안 받은 부모교육이 무슨 소용인가 싶다. 담임이 무슨 말을 하든 특수교사가 무슨 말을 하든 그저 “네~” 하기 바쁘고 고개도 절로 숙여진다.

고개 숙인 엄마는 아이의 일반학급과 특수학급 수업 비율 및 과목별 배치 등을 교사와 합의해 정해야 하지만 정작 현실에선 교사의 제안에 따르곤 한다. 특수학급에 더 있게 하고 싶은 엄마도 있고 일반학급에 더 있게 하고 싶은 엄마도 있지만 이미 일정표를 정한 교사에게 반문해 볼 용기는 없다.

이렇게 해서 아이의 학교생활이 시작되는데… 사실 일반학급에 있어도 이게 정말 통합교육인지 잘 모르겠다. 한 교실에 함께 있을 뿐, 아이는 교실 안에 홀로 떠있는 섬 같은 존재다. 그러다 반 아이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여겨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담임은 특수교사를 호출해 아이를 특수학급에 가 있게 한다. 일반학급에 손님처럼 가 있던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듯 특수학급으로 간다.

사실 나도 이것이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통합교육을 위해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지만 그래도 내 아이가 마음 편히 있을 곳은 특수학급이라 생각했다. 특별한 문제의식을 못 느꼈다.

그런데 얼마 전 특수교사로부터 알게 된 사실의 진짜 의미는 이래선 안 되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통합교육을 위해 일반 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그래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일반학교 안에 있는 특수학급, 그러니까 특수교사 및 특수교육지원인력(실무사 및 지원사, 공익근무요원)의 존재 이유는 장애학생도 비장애학생과 똑같이 일반학급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개별적 지원을 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재의 특수학급은 어떤가.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도움반(특수학급)’이라는 또 다른 분리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간편하게(?) 장애학생을 교육시키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소속은 원래 반에 되어 있으면서도 장애학생의 ‘진짜 소속, 진짜 교실’은 특수학급이라는 생각이 교사와 부모와 학생 모두에게 널리 퍼져 있다.

특수학급의 원래 설립목적을 듣고 얼마나 충격이 컸던지 교육부에 직접 확인을 했다. 정말 특수학급이 통합교육의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게 맞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그렇다고 한다. 일반학급에서 수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게 특수학급의 존재 이유란다.

그렇다면 많은 게 바뀌어야 한다. 약속된 시간이 되면 장애학생이 특수학급으로 가 특수교육을 받고 다시 원래 반에 돌아오는 게 아니라, 일반학급의 진도에 맞춰 일반 교실에서 장애학생도 교육을 받아야 한다. 반 친구들과 같은 주제의 공부를 하되, 장애학생 개별 수준에 맞는 별도의 교수 자료를 따로 제공해 한 공간에서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특수교사와 지원인력의 임무가 바뀌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사실 가장 편한 건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다. 특수교사는 자신만의 공간인 특수교실에서 시간 맞춰 차례대로 오는 아이들을 가르치면 편하고, 일반교사는 늘 해왔던 대로의 수업만 하면 편하다. 부모조차도 마찬가지다. 다른 학부형들의 눈칫밥을 먹느니 내 아이가 특수반에서 지내는 시간이 마음도 편한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이것이 옳은 방향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방식은 통합교육을 위해 다니는 학교 안에서조차 차단된 공간을 만들어 분리 교육을 공고히 하는 행위라는 걸 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에 편견과 고정관념은 더욱 강화된다는 걸 알고 있다. 분리된 그들은 나와 같은 반 친구가 아닌 특수반에 다니는 장애인이다.

솔직해지자. 우리 모두가 이런 사실을 어렴풋하게, 또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알고는 있으면서도 현실을 이유로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다. 현실적으로 힘든 일이라며 합리화도 시켰다.

그러나 힘든 일인 건 맞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실제 일반학급 안에서의 통합교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교육을 하고 있는 특수교사를 나는 두 명이나 알고 있다. 그들을 보면 감사하기도 하면서 짠하기도 한데, 그 이유는 “장애인은 특수반이 원래 소속”이라 생각하는 교장ㆍ교감 및 일반교사와 부모들을 설득해가며 학교 안에서 홀로 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홀로 분투하는 특수교사가 비단 그 두 명만은 아닐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특수교육 대상자가 영재부터 장애인, 외국인부터 느린 학습자까지 그 대상이 한층 넓고 다양하다. 말 그대로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별도의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누구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특수교육이다. 그러다 보니 특수교육대상자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고 특수학급에 따로 분리해 교육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앞으로의 우리 사회에서도 ‘다양성’은 피해갈 수 없는 과제다. 급속히 늘어가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 탈북한 가정의 아이(언젠가 통일 이후 만나게 될 북한의 아이들도), 굳이 영재학교에 가지 않은 영재와 장애학생. 이 모든 이들이 개별지원이 필요한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적어도 방향성은 확실히 잡고 가야 한다.

그러려면 장애인만 특수교육대상자인 지금부터라도 통합교육이 그 구실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만 탓하면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현실을 바꾸는 건 행동뿐이다. 궁극적으로는 제도뿐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돌아오고 있다. 통합교육을 할 것인가, 통합교육 내의 분리교육을 할 것인가. 선택은 학교 현장의 몫이다.

류승연ㆍ작가 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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