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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이코노미석 등받이

입력
2019.01.11 18:00
수정
2019.01.12 23:17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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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다섯 시간 넘게 타야 한다면 여러 준비를 하게 된다. 보고서 마무리를 살짝 미루거나, 드라마를 몰아 보기 위해 노트북에 담아두기도 한다. 그런데 이륙하자마자 이코노미석 앞자리 승객이 등받이를 최대한 뒤로 젖혀 테이블을 쓰기 어려워진다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등받이 각도에 따라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뒷좌석 승객의 약 10~12㎝가량 공간은 누구 소유일까. 항공사는 앞 좌석 승객 소유라고 정하고 있다.

□ 소중한 영토를 침범당한 뒷자리 승객이 모두 항공사 규정을 순순히 따르는 것은 아니다. 무릎을 최대한 올리는 등 여러 방법으로 등받이를 뒤로 젖히지 못하도록 저항한다. 유한한 자원을 분배하는데 탁월한 ‘시장 원리’가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미국의 한 연구는 6시간이 걸리는 미국 대륙 횡단 비행을 가정하고 “얼마를 받으면 앞 좌석을 뒤로 젖힐 권리를 포기할 것인가”와 “그 권리를 받는 데 얼마를 낼 것인가”를 물었다. 조사 결과, 앞 좌석 권리 포기 평균 희망가는 41달러, 뒷좌석의 권리 양도 대가는 18달러였다. 그 공간은 앞 좌석 소유라는 항공사 규정의 정당성이 입증된 셈이다.

□ 반론이 나왔다. 이 연구는 공간 소유권이 앞 좌석 승객 것이라 전제했는데, 소유권을 정하기 모호한 공유 자원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소유할 것인지, 경매에 부치는 방식으로 질문을 바꿨다. 그랬더니 앞 승객이 등받이를 뒤로 젖히는데 낼 비용은 평균 12달러, 뒤 승객이 세워두는데 쓸 비용은 39달러로 달라졌다.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나’에 따라 지불액이 크게 바뀐 것에 대해 행동경제학은 “기득권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포기하기 싫어하는 인간 본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최저임금 구간 결정 과정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성공하기 힘든 방안으로 보인다. 우선 최저임금은 ‘임금을 시장 원리에만 맡기면 안 된다’는 반성에서 도입된 제도이다. 또 이코노미석 등받이 다툼에서 봤듯, 기득권을 양보하는 문제에는 시장 원리가 작동하기 힘들다. 어떤 전문가도 노ㆍ사가 모두 수긍할 객관적 기준은 만들기 불가능하다. 정부는 전문가의 뒤에 숨지 말고 최저임금 결정의 전면에 나서 협상을 주재해야 한다. 그게 정부와 정치가의 임무다.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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