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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호더와 단사리

입력
2019.01.12 04:40
수정
2019.01.12 23:1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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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새해를 맞는 기분으로 대대적인 집안 청소와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핵심은 안 쓰는 물건 버리기와 자리 차지하는 가구의 부피 줄이기였다. 매번 청소나 정리를 할 때면 나는 쓸데없는 걸 너무 안 버린다는 잔소리를 듣곤 한다. 어린 시절부터 아껴 써야 한다고 배워 왔기 때문인지 버리는데 참 인색했던 것 같다. 고장 나지 않은 물건은 절대 버리지 않았고 언젠가 쓸 데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결국 쓰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들도 날더러 호더 성향이라고 말하곤 했다. 호더(Hoarder)란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사람을 말한다. 심한 경우에는 필요 없는 물건이나 쓰레기도 집안에 쌓아두는데, 의학적으로는 ‘저장강박증’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 비난을 떨쳐버리려고 이번에는 작정하고 멀쩡해도 안 쓰는 물건은 과감히 버렸고, 큰 가구는 작은 가구로 바꾸었다. 그러자 비좁던 거실은 눈에 띄게 넓어졌고, 집안 곳곳에 만들어진 여백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홀가분해졌다.

대청소를 통해 나는 삶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성찰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하지만 필요해 뭔가를 구입하다 보면 하나둘씩 살림이 늘게 마련이다. 한 번씩 이사 갈 때면 어느새 부쩍 늘어난 살림에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어떤 물건이건 수명이 있고 유행이 있어서 이를 평생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운동기구나 팬시 제품 중에는 고작 한두 번 쓰고 처박아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버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의외로 많다. 하지만 버리지 않으면 쌓이고 녹슬고 집안이 어지러워진다. 어느 순간 우리는 불필요한 물건과의 과감한 이별을 결심해야 한다.

한때 일본에서는 ‘단사리’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단사리란 ‘끊고(斷) 버리고(捨) 떠난다(離)’는 의미다. 번뇌를 끊고, 불필요한 건 버리고, 집착과 이별하는 생활 방식이 바로 단사리다. 평범한 주부였던 야마시타 히데코가 쓴 ‘단사리’는 일약 베스트셀러가 됐고, 그녀는 단사리 컨설턴트로 변신했다고 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했던 과거에는 많은 것을 사고 소유하고 배불리 먹는 것이 행복한 삶이었고, 살짝 배가 나온 것은 부자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소유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달라졌다. 꼭 필요한 것만 사고 그렇지 않은 것은 렌탈이나 리스를 한다. 웰빙을 선호해 기름진 음식은 피하고, 일부러 돈을 들여 살을 뺀다. 에코 디자인을 표방하는 미니멀리즘, 잘 사는 것보다는 잘 버리는 걸 중요시하는 미니멀 라이프도 건강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도 아직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우고 모으는 걸 좋아하고, 버리고 비우는 데 익숙하지 않다. ‘염일방일(拈一放一)’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아이가 장독에 빠졌는데 어른들은 사다리와 밧줄을 가져터 왔지만 여의치 않아 죽을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사마광이 돌멩이로 장독을 깨 구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하나를 잡으려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장독을 버려야 했던 것이다. 손에 하나를 움켜쥐고 있으면서 하나를 더 쥐려고 하면 모두 다 잃을 수 있다. 내 떡이 있는데도 더 커 보이는 남의 떡을 탐낼 때 불행이 시작된다. 낡고 오래된 지식도 비워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케케묵은 지식까지 버리지 않는 건 지식 호더다. 또한 마음의 단사리도 필요하다. 미움, 원망, 나쁜 기억들은 쌓아두지 말고 버렸으면 좋겠다. 모두가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로 살 순 없겠지만 불필요한 걸 버리고 쓰지 않는 걸 나누다보면 세상은 좀 더 여유로워질 것이다. 단사리가 가져다 주는 소확행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해년 새해에는 뭘 버리고 뭘 비울지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자.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과학문화협력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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