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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의 시대 연 천재 물리학자가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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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의 시대 연 천재 물리학자가 우리에게 남긴 것

입력
2019.01.10 16:38
수정
2019.01.10 18:5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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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 세그레ㆍ베티나 호엘린의 ‘엔리코 페르미 평전’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설계한 물리학의 교황 엔리코 페르미. 반니 제공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설계한 물리학의 교황 엔리코 페르미. 반니 제공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폭탄이 터지자마자 도시 인구 4분의 1(10만명)이 사망했다. 사흘 후 나가사키에도 폭탄이 떨어졌다. 3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은 항복을 선언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참혹한 승리였다. 핵폭탄을 쥔 미국은 패권국이 됐고, 소련과 독일은 핵개발에 뛰어들었다. 핵의 시대가 열렸다. 그 결과 10개국이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고, 전 세계 31개국에 454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운영 중이다. 지구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됐다.

이 끔찍한 핵의 시대를 연 과학자 엔리코 페르미(1901~1954)는 1901년 이탈리아 북쪽 피아첸차에서 태어났다. 철도청 공무원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3남매 중 막내였다. 열세 살에 라틴어로 된 수리물리학 책을 독파할 정도로 수학과 과학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열일곱에는 ‘근대 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의 고향이자 물리학으로 유명한 피사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시험에서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그는 학창시절 내내 유수한 논문을 발표해 학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졸업 후 물리학을 경시했던 이탈리아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1939년 미국에 도착한 페르미 가족. 아내 라우라 카폰(왼쪽부터), 아들 줄리오, 딸 넬리, 엔리코 페르미. 반니 제공
1939년 미국에 도착한 페르미 가족. 아내 라우라 카폰(왼쪽부터), 아들 줄리오, 딸 넬리, 엔리코 페르미. 반니 제공

독일과 네덜란드 등을 떠돌다 후원자를 만나 1926년 로마 대학의 첫 번째 이론물리 교수로 임명됐다. 2년 후 유대인이었던 아내 라우라 카폰과 결혼했다. 이후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중성자 충돌을 통해 새로운 방사성 원소를 발견했고, 느린 중성자로 핵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당시 동료들은 그를 ‘물리학의 교황’이라 불렀다.

시대는 불안했다.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고조됐고, 반유대주의 정책이 고개를 들었다. 유대인 교수의 비중이 높았던 이탈리아에서 동료 교수들이 하나 둘 고국을 떠났고, 유대인이었던 아내의 안위도 걱정됐다. 193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기회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은 새로운 풍토를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이었고, 페르미도 이 같은 환경을 바탕으로 역량을 키워나갔다.

당시 전쟁에 무관심했던 미국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위기 의식이 커졌다. 시대는 페르미를 요구했다. 미국은 본격 원자폭탄 개발에 돌입했고,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페르미에 달려 있었다. 정치와는 거리를 뒀던 순수 과학자이길 원했던 페르미는 자신과 가족을 환대해준 미국에 마음의 빚이 컸다. 과학자로서의 욕망도 그를 부추겼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그는 1945년 미국 뉴멕시코주 트리니티에서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 폭발 실험을 성공했다. 그로부터 3주 후 일본에 원자폭탄이 투하됐다.

페르미는 그의 과학적 성과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생생히 목도했다. 미국은 국가과학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인 핵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페르미는 이를 거부하고 학계로 돌아갔다. 그는 훗날 친구에게 “전쟁을 일찍 끝내는데 기여하게 돼 대단히 만족스러웠다”며 “폭탄이 국제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엔리코 페르미 평전

지노 세그레ㆍ베티나 호엘린 지음ㆍ배지은 옮김

반니 발행ㆍ504쪽ㆍ2만5,000원

페르미가 아꼈던 제자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에밀리오 세그레(1905~1989)의 조카 지노 세그레와 그의 부인이 쓴 페르미 평전은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하고자 했던 천재 과학자가 시대의 요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부응했는지를 그의 생을 통해 설명한다. 여전히 그가 발견한 원자력이 무한한 에너지 공급원인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핵무기인지에 대한 논란은 뜨겁다. 이에 대해 저자는 페르미가 한 강연에서 밝힌 이야기로 마무리했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얻은 힘을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질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도록 모두 간절히 바랄 뿐이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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