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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에이즈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

입력
2019.01.1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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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전인 1988년 1월 런던에서 열린 세계보건장관회의가 ‘세계 에이즈(AIDSㆍ후천성면역결핍증)의 날’(매년 12월1일)을 지정할 때만 해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확산을 막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다. 실제 HIV 감염자들은 1980년대 초부터 2017년까지 7,000만 명이 넘었고 그 중 3,500만 명이 사망했다. 유엔에 따르면 여전히 4,000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HIV 보균자로 생활하고 있다. 다행히 그동안 HIV 전염 예방과 필요한 검사 및 치료를 제공하는 사업과 노력에 괄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 효과적인 백신들도 잇따라 나와 임상실험 등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에이즈와의 전쟁이 거의 종식됐다고 선언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유혹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 험난한 전쟁은 이제 겨우 시작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이뤄진 HIV와 관련된 진전 중 대부분은 HIV 확산을 줄이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한 15년간의 정책 로드맵인 ‘새천년 개발 목표(MDGㆍMillennium Development Goal)’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예방 및 치료 서비스가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선 그 성과가 탁월했다. 2015년 MDG의 뒤를 이은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ㆍSustainable Development Goal)’에선 2030년까지 달성해야 할 169가지 세부 목표 중 하나로 에이즈 종식 외 추가적 진전이 포함됐다. 이처럼 ‘목표’에서 ‘세부 목표’로 전환되고, 에이즈 사망률이 10%대로 감소하면서 일각에선 더 이상 HIV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에이즈가 거의 정복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HIV는 여러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가 함께 얽혀 있는 복합적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생물 의학적 대응이 질병관리에서 가장 핵심적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의료ㆍ예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경우엔 아무리 설계가 잘 된 에이즈 퇴치 프로그램도 실패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의료 서비스 문제가 아닌 정치ㆍ경제ㆍ사회적 소외로 인해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 불평등으로 여성들이 성관계 장소나 시점, 심지어 상대조차 결정할 수 없는 국가에선 감염률을 떨어뜨리는 게 쉽지 않은 형편이다.

현재 전 세계 지역에서 HIV는 의학적 치료와 생활 방식의 변화를 통해 관리가 가능한 만성 질환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매우 훌륭한 진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HIV 감염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거나 양성 판정을 받은 경우에도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이가 수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에이즈 정복을 거론하려면 이러한 문제부터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 HIV 정복을 위한 노력을 SDG와 더욱 긴밀하게 통합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각국 정부에서 사회 보호, 식량 안보, 성 기반 폭력 등의 영역에서 SDG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동시에 HIV에 대한 대응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빈곤, 교육, 성 편향과 같이 사람들을 HIV 감염에 노출시키는 문제와 HIV 전략을 연계할 때에만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이 에이즈의 공포에서 해방되는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최근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시에선 남성 동성애자(게이)를 색출하고 처벌하기 위한 조직이 만들어질 것이란 계획이 발표되자 수백 명의 레즈비언ㆍ게이ㆍ양성애자ㆍ트랜스젠더(LGBT)가 정체를 감추는 일이 벌어졌다. LGBT 집단이 탄자니아의 HIV 예방을 위해 최전선에서 노력해 온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인권에 대한 위협은 HIV 대응 노력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다. ‘국제 HIV/에이즈 연맹’의 보고서에 따르면 부부나 혼외 관계에서 강제적인 성관계가 만연해 있는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렇게 강제적이고 종종 폭력적이기까지 한 성관계는 여성이 HIV에 감염될 위험을 높인다.

에이즈는 다른 문제들과 떼어 놓고 다뤄선 효과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수 없다. 에이즈를 종식시키려면 사회ㆍ문화ㆍ경제ㆍ법적 문제를 상호 연계하는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활동가들은 그 동안 성 차별적인 법률의 폐지와 성 건강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 그리고 HIV 예방과 치료가 국적ㆍ성별ㆍ경제적 지위에 따라 달라져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SDG의 모토는 “아무도 제외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HIV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 중 다수가 소외될 위험에 처해 있다. 실제 최근 HIV 감염률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빈곤 계층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SDG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HIV와 에이즈로 인한 재앙을 종식시키는 목표는 요원해질 수 밖에 없다.

크리스틴 스테글링 국제 HIV/에이즈 연맹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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