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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어린이처럼] 밤

입력
2019.01.04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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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미스즈(1903~1930)는 일본의 유명 동요시인이다. 1923년 잡지 ‘동요’ ‘부인구락부’ 등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나 시집이 생전에 출간되지는 않았다. 남동생이 보관하던 자필 유고 노트 세 권이 시인 야자키 세츠오의 오랜 연구 끝에 발굴, 조명되어 1984년 8월에야 시집으로 처음 출간됐다. 작품은 총 500여 편. 시집 출간 이후 그의 시는 널리 암송되고 노래로 만들어졌으며, 고향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에서는 정기적으로 기념회 및 동요 콘서트가 열린다고 하니 ‘국민작가’라 할 만하다.

기타하라 하쿠슈, 사이죠 야소, 노구치 우조 등 기라성 같은 윗세대 시인 사이에서도 가네코 미스즈의 시가 유일한 반짝임으로 오랜 세월을 넘어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까닭은 무얼까. 최근 우리나라 유명 가수가 방송에서 그의 시를 읽어 화제가 되기도 했고, 다른 가수는 그의 시에서 영감 받았다 하니 문득 더 궁금해진다.

“울지 마, 강아지야/날이 저문다.//저물면/엄마 없어도,//감청색 밤하늘에/아련하게/우유의 강이/보일걸.//(‘우유의 강’ 전문)”

첫 시 ‘밤’에서 아이를 지켜주는 건 엄마다. 엄마가 입혀주는 새하얀 잠옷으로 밤의 어둠과 공포를 물리친다. 하지만 ‘우유의 강’에는 엄마가 없다. 엄마는 없지만 밤하늘 은하수, ‘밀키 웨이’(the Milky Way)가 강아지의 젖줄이자, 위안이자, 힘이 된다. 까만 밤에 엄마가 있으면 좋겠지만, 엄마가 없으면 울고 싶지만, 밤하늘에는 또 은하수가 있다. 아니, 날이 저물어야 비로소 은하수가 뜬다.

한없이 투명하지만 마냥 천진하지만 않은, 쓸쓸함과 슬픔이 가득한 이 마음이 오늘의 독자에게도 가닿는 걸까. 결코 행복했다 할 수 없는 그의 삶이 겹친다. 방탕한 남편과 불화했고, 남편은 시 창작을 방해하기까지 했으며, 가난과 병으로 고통 받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그 가운데 피어올린 시다.

지금까지 가네코 미스즈의 시는 선집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 전집 ‘별과 민들레’, ‘억새와 해님’으로 만나왔다. 그럼에도 시화집 ‘내가 쓸쓸할 때’는 새로운 편집과 번역으로 가네코 미스즈를 처음 만나는 기분이 든다. 시 선정과 편집 구성, 수채화로 그린 시화는 투명하고 쓸쓸한 시의 세계로 담뿍 빠져들게 한다. 한지 느낌의 재킷 종이와 수작업 양장 제본의 특별한 만듦새는 정성껏 포장되어 멀리 바다 건너 온 선물을 받는 것 같다. 선물 받는 기분이니 선물로도 좋겠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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